작은 교회의 큰 울림
  • 모용복선임기자
작은 교회의 큰 울림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0.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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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이웃을 위태롭게 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이라는
어느 시골교회 목사의 대자보
일부 대형교회의 독단에 일침
이웃을 감염 불안에 떨게하고
국가 방역체계 무력화하는 건
종교인의 이웃사랑 자세 아냐
최근 한 시골교회가 인구(人口)에 회자되고 있다. 일부 대형교회들의 독단이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이 교회 담임목사가 한 일이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코로나19 창궐로 인한 집단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국의 많은 교회들이 대면예배를 강행하고 있어 국민들에게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이 시골교회 목사는 이들과는 결이 다른 ‘핵사이다 행보’를 보여줘 꽉 막힌 국민들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세속화 된 교회들이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정부 방역체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예사로 일삼으며 국민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놓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 시골교회가 주는 울림은 결코 적지 않다.

충남 천안의 한 시골에 위치한 안서교회. 며칠 전 이 교회 현관 유리문에 대자보가 나붙었다. 담임목사인 고태진 목사가 내 건 대자보다.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배 드리면 죽인다고 칼이 들어올 때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첫 구절만 보면 “시골이나 도회지나 역시나 교회는 다 같은 교회구나”라고 백안시 할지 모른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에 노출된 많은 교회들처럼 현장예배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진 구절에서 절묘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배 모임이 칼이 되어 이웃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모임을 잠정 연기하고 가정예배로 전환한다고 신도들에게 알리고 있다.

현재 트위트 등 각종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이 대자보 내용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또한 고태진 목사의 행동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종교가 구원의 역할을 망각하고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민심을 도탄에 빠트리는 상황에서 고 목사의 행동은 참종교인이라는 찬사를 듣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 포항 죽장면에 있는 시골교회인 정자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다. 비록 필자는 비종교인이지만 예전에 알고 있던 은퇴한 목사님이 초청설교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 예배당을 찾은 것이다. 은퇴 직전까지 기계제일교회 담임목사를 봉직(奉職)한 조석종 목사님이다. 그 분은 보수성향이 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설교를 들은 적이 있기에 사실상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담담히 들었다. 하지만 설교 도중 조 목사님으로부터 뜻밖의 말들이 쏟아져 나와 무척 놀랐다.

조 목사님은 노구(老軀)와 병마(病魔)로 인해 몸이 불편한 가운데에서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해 목청을 높여 성토했다. “교회라고 다 같은 교회냐, 교회가 교회다워야 교회지.” “목사라고 다 같은 목사냐, 목사가 목사다워야 목사지”라고 하시며 신앙생활보다 물질을 추구하는데 혈안인 대형교회와 목사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30년 넘게 교회 안에서 생활하다 이제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 바라보니 많은 문제점이 보였던 것이다. 조 목사님 말씀처럼 교회답지 않은 교회, 목사답지 않은 목사들로 인해 종교는 타락하고 사회는 갈수록 혼란해지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 현주소다.

모든 종교의 시작과 끝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보다 이웃을 향한 이타적인 사랑이다. 따라서 대면예배를 강행하면서 이웃을 감염 위험에 노출시켜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종교인라고 말할 수 없다. 국가 방역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종교의 자유라면 이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감염병 예방을 통해 국민 건강을 지켜내고 사회 안녕을 유지시키려는 국가방역을 방해하는 것은 곧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이웃사랑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세속화된 대형교회들이 국민정서는 아랑곳없이 그들만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들에서는 국가방역체계에 적극 협조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조용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일부 대형교회들이 신앙보다는 돈에 경도돼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 것에 반해 시골교회목회자들은 마을주민과 함께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시골교회 목사는 마을 어르신들 화투놀이에 짝이 모자랄 때 기꺼이 짝이 돼 주기도 한다지 않은가.

현재 많은 교회들이 참신앙생활을 통해 신도들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밑도 끝도 없는 정부비판과 요설(妖說)로 혹세무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정부의 고강도 방역조치를 대국민 사기라고 주장하며 순교(殉敎)를 하겠다고 나서는 목사까지 있으니 세상 참 요지경이다. 아마 그 목사는 자신이 종교적인 박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느 누리꾼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감옥보다 정신병원에 먼저 가야 하는 것 아니냐.”

한 때 밖으로는 불의(不義)에 항거하고 안으로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통해 신도들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했던 목회자들은 이제 시골의 작은 교회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 이들 교회는 비록 규모는 작고 신도 수는 적으나 그들이 주는 감동과 울림은 결코 적지 않다. 그들이 있기에 아직 종교에 희망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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