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장관이 아니라서 미안해…”
  • 모용복선임기자
“엄마가 장관이 아니라서 미안해…”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0.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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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돋보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대형 태풍이 연이어 한반도를 휩쓸어 많은 국민들이 “못 살겠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런데 이 판국에 국민 상처를 보듬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줘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시선엔 아랑곳없이 ‘그들만의 이상한 리그’를 벌이고 있다.

요즘 아침에 조간신문을 펼쳐들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메인뉴스를 장식하는 건 코로나19도, 태풍 피해도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병역 관련 의혹이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사실 처음 의혹이 불거질 때만해도 유력 정치인과 재벌, 심지어 연예인까지 온갖 편법을 써가며 병역면피(免避)를 일삼아온 것이 이 땅의 엄연한 현실이거늘 군 면제를 받은 것도 아니고 휴가일수 등이 무슨 큰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의 과도한 의혹 부풀리기라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추 장관 측의 설익은 해명이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면서 각종 논란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급기야 소셜미디어 상에서 ‘엄마 찬스’라는 말까지 나돌면서 20·30대 젊은 층과 군인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아들이 어깨를 다쳐서 수술을 받았는데도 고작 2박 3일 병가를 받았다” “하늘로 간 내 아들! 엄마가 장관이 아니어서 미안해”라는 주부들의 글에서부터 “휴가 복귀 1시간만 늦어도 부대 전체가 뒤집히는데 억지를 써가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전역병의 글까지 비판일색이다.

병역문제는 교육과 더불어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자녀를 가장 보내고 싶지 않은 곳이 군대요, 가장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가 터질 될 때마다 국민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동시에 맛봐야 했다. 병역과 교육특혜 의혹은 부자와 고위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다. 백 없고 돈 없는 서민이 무슨 수를 써서 군 면제를 받거나 휴가를 고무줄처럼 늘리는 등 병역특혜를 받을 수 있으며, 자녀를 실력 이상의 학교에 보낼 수 있나. 그러니 힘없는 서민은 온라인에서라도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추 장관 아들 병역특혜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든 ‘아빠 찬스’ 논란을 불러일으킨 ‘조국 사태’를 연상케 한다. 야권은 ‘제2의 조국 사태’로 규정하고 연일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국 사태’와 추 장관 아들 병역 의혹은 우리 국민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그 파급력은 결코 적지 않다. 추 장관 측이 어떤 해명을 내놓든 국민들은 당분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추 장관의 이러한 논란과 의혹들은 보수야당·일부 언론이 팽팽히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안이어서 아직 왈가왈부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자칫 과도한 폭로전에 휘말려 애꿎은 희생양이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사태가 이토록 확대될 만한 사안도 아니다. 군 복무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그에 따른 응당한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마 찬스’가 개입됐다면 추 장관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추 장관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는 21대 첫 정기국회에서 야당 의원의 아들 병역의혹 제기에 “소설을 쓰시네”와 같은 식의 원색적인 어조로 반발을 했다. 그가 법 행정을 관할하는 수장으로서 조금이라도 겸허한 자세로 야당 의원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고 실제로 아들 병역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먼저 살펴봤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고위층 자녀 병역과 교육문제는 우리사회 불공정의 극치를 보여준다. 탄핵 당한 전 정권을 딛고 새롭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사실 국민의 손으로 세운 정권이다. 국민들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현 정권이 가장 서민 편에 서서 눈물을 닦아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득권층의 불공정과 부조리를 일소(一掃)하고 새로운 공정사회를 건설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정권 출범 3년이 지나도록 여당 소속 유력 대선주자를 비롯해 단체장들의 잇단 성추문 사건이 터져 나오고 전·현 법무장관들은 불공정 시비에 휘말리는 등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특히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이 정부 인사들의 전형적인 ‘내로남불’ 언행이다. 외고 규제를 외친 조 전 장관의 딸은 외고를 다녔으며, 우병우 아들 ‘운전병 특혜 의혹’을 제기한 추 장관은 아들 병역의혹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 본다’는 옛 속담이 생각난다. 이들의 콧대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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