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스 -아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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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스 -아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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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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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명멸해 간 문명의 흥망성쇠를 분석하여 ‘역사의 연구’라는 저서 12권을 집필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꾼 창조적 소수가 다시 파멸에 이르는 사이클을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Koros-Hybris-Ate에 대입하여 설명했다.

코로스(Koros)는 ‘포만’으로 독선에 배불러 도덕적 잣대와 균형감각의 상실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Hybris는 다음단계로 오만을 뜻한다. 자신들이 거쳐 온 과거의 방법이나 능력을 맹신하여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상태에 이르면 사리에 어두워져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으며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방종과 함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만용을 행한다.

결국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분노처럼 성난 군중에 의해 아테(Ate) 즉, 파멸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토인비는 국가나 사회를 혁신시켰거나 성장시킨 지도자나 집단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쇠퇴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코로스(포만)-휴브리스(무분별)-아테(파멸)의 패턴을 거친다고 했다.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소수들이 자신들이 성공한 방법을 모든 곳에 다 통하는 절대적 진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대정권을 면밀히 살펴보면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성공한 대통령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정권의 불행한 말로가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노라며 촛불을 밝히며 입성한 현 정권도 오만과 독선의 단계를 거쳐 정의와 불의를 내편이냐 아니냐로 가름하며 무분별한 잣대를 휘두르면서 정확히 아테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이 정부의 인사실패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국민들은 알만큼 알고 있다. 문제는 여당과 정권의 태도다.

어떤 사안이든 사과는 커녕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조국 전 장관이나 위안부 할머니의 등골을 빼먹은 윤미향 의원의 불법모금 및 횡령사건, 요즘 떠들썩한 추미애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논란, 만약 이들이 야당인사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추미애 의원은 법무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검찰조직을 거의 와해시킬 듯한 기세로 조국수사와 관련된 검사들을 모조리 한직으로 내쫓고 제 편에 선 검사들을 요직에 포진시켰다. 그런데 그 이유가 그 뿐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골치 아픈 법적공방을 차치하고 상식적으로 한번 따져보자. 휴가 끝나고 제 시간에 안 왔으면 이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미복귀이다. 부대까지 걸어가는 것도 아닐 터인데 무릎이 아프면 일단 복귀한 후 다음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지극히 명확한 사실하나 검증하면 될 일을 검찰은 왜 8개월이나 질질 끌었을까. 일반 서민의 아들이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사법부는 또 어떠한가. 주호영 원내대표의 말처럼 ‘내편 무죄’, ‘네편 유죄’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대법원은 정권에 불리한 사건은 대부분 파기 환송하거나 재판을 하지 않은 채 질질 끌고 있다. 4·15총선 이후 야당 국회의원 후보 등으로부터 114건이나 선거소송이 제기되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5개월이 넘도록 단 한건도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정치판은 더욱 목불인견이다. 법과 정의 도덕적, 윤리적 양심을 최일선에서 지키고 본을 보여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거짓과 비양심, 몰염치한 행태의 선봉에 서 있다. 틀린 건 틀리고 맞는 건 맞다고 인정하며 국민과 사회의 통합을 주도해야할 정치권에서 해괴한 논리로 제편 감싸는 걸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앵무새처럼 협치를 말하면서 결국은 닥치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세 사람만 모이면 잘난 자와 못난 자, 바다를 좋아하는 자와 산을 좋아하는 자로 갈리듯 국민들 또한 아무리 고도의 지식과 합리적 사고를 지녔다 해도 좌·우는 갈라진다. 아무리 찍어 눌러도 세상이 존재하는 한 어느 한쪽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 한쪽을 멸해야 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타협과 협력의 길을 찾아야 하건만 서로 더 거칠고 원색적인 날카로운 말로 더욱 아프게 찌르려한다.

이런 행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이제 ‘법과 정의와 도덕의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정녕, 힘을 갖지 못한 정의는 무력한 것인가. 이 나라는 왜 내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도덕과 윤리, 정의와 법의 적용 잣대가 극명하게 다른가. 이대로 간다면 이 나라가 정말 온전할까. 이 정권은 대체 어떤 이념을 가지고 어떤 미래를 추구하는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북한과는 어떤 통일을 이루려 하는가. 이 조그만 나라가 먹고살만하게 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나라 빚이 천조 원에 다다르고 있는데 쌈짓돈인 양 퍼질러대는가. 대체 미래세대에 무엇을 물려주고자 하는가.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아버지를 가슴깊이 증오하며 자신은 저런 아버지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한 아들이 어른이 되어 되돌아보니 저도 그런 아버지가 되어있더라는 어느 가장의 말처럼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투쟁했던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타도의 대상과 닮아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과거독재 정권보다 더 진일보한 독선과 독재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을 만들겠노라며 호기롭게 등장한 이 정부는 가장 민주적인 정권일 것이라 기대했었다. 겪어보니 알겠다. 맞는 말이다. 유사 이래 가장 뻔뻔스럽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비열한 술수정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이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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