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을수록 구수한 갈빗살처럼 좋은 일 하니 좋은 일만 생기더군요” 
  • 경북도민일보
“씹을수록 구수한 갈빗살처럼 좋은 일 하니 좋은 일만 생기더군요”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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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헤어진 남편 가족 찾았을 때 가장 좋아
시아버지가 막내 아들 생각하며 좋은 일 하신 덕
아이들 유학보내고 여행 등 하고싶은 일 많이 해
장사가 잘되다보니 도움 요청하는 이 많아
버거울 때 있지만 웬만하면 도와주려 노력
식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서말순 여사.
신라식당에서 딸과 함께
보화원 표창장
윤혜주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서말순 여사.
50여년의 세월 속 맛·전통 이어가는 서말순 여사<하>

△살면서 좋은 일도 생겼다

바로 우리 영감 가족을 찾은 일이다. 얘들 큰아버지가 서울에서 큰 부자였다. LG전자 전국 총판을 했는데 돈을 잘 벌었다. 그분이 부자니까 수소문해서 우리 영감을 찾았다. 있는 것이 돈밖에 없는 분이다.

전쟁통에 월남해서 형님은 서울에서 기반을 잡았고, 우리 남편은 부산에서 자리 잡느라 서로 헤어져 살았다. 북에서 고향은 황해도 영변이었다. 지금 누나들은 고향 연변에 있고 형제만 월남했다. 형님이 동생을 찾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사실은 우리가 형님을 찾아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생각했는데,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사주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우리보다 더 잘 살고 계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서로 성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님 자녀들은 큰아들은 서울에서 치과를 하고 둘째는 하시던 일을 물려 주었다. 우리 영감이 자주 안 가는데, 가면 용돈을 두둑이 받아서 내려온다. 명절 때 한 번씩 만나기도 한다. 우리 시아버지는 서울에서 큰아들과 함께 살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여윳돈이 생기면 거지들 밥을 사주었다. 막내아들 생각이 나서 그렇게 했나보다, 그렇게 덕을 쌓다 보니까, 결국은 작은아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했다

아이들이 영국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나를 초청해서 한 달 있다가 오고, 또 한 번은 두 달 있다가 유럽여행도 하고 돌아왔다.

지금도 소갈비 손질은 직접 다 한다. 이것이 신라왕갈비의 비법이다. 소찌개가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것은 갈비살이기 때문이다.

고소하고 맛이 있고 좋다. 밑반찬도 재료를 좋은 것을 쓰기 때문에 맛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참기름 하나도 단골이 있어서, 믿고 맡기는 곳이 있어서, 그곳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르다. 나는 척 보면 벌써 안다. 사장님들에게 수십 년 거래하면서 잘해 달라고 늘 부탁한다. 그래서 아주 잘하는 곳 만 거래를 한다. 그런 곳이 꼭 있다. 모든 식재료 쓰는 곳이 다 그렇다. 배달하는 아저씨들이 좋은 곳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 것이 나가야 들어오는 것이다. 내 것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우리 아들에게도 말한다. 손은 밖으로 뻗어야 한다. 안으로 향하면 안 된다. 남자는 밖으로 활동을 넓혀야 한다고 자식들에게도 말한다.

지역에서도 가게가 크고 장사가 잘 되니까, 손 벌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카운터 맡은 우리 딸이 알아서 챙겨 준다. 우리 딸이 없으면 그냥 간다. 며칠 전에는 동사무소에서 나왔다고 돈을 받으러 왔더라. 그런데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그거 모두 사기라고 돈 주지 말하고 연락이 왔다. 이런 일들이 많다. 요즘은 상이군인들은 없다.

그러나 맥주병 챙겨가시는 할아버지가 있다. 돈 준다고 해도 안 가져가고 꼭 맥주병만 가지고 간다. 버릇인가 보더라. 우리만 없으면 살짝 와서 가져간다. 그런데 맥주병이 없으면 우리가 채워주어야 한다. 그래서 곤란할 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남에게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에게 주는 ‘표창장’을 받았다. 재단법인 보화원에서 주는 ‘보화상’과 ‘선행상’을 받았다. 남들에게 봉사를 많이 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송도의 교회에 어려운 분들도 도와주고 그랬다. 시청에서 나왔기에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다가 대구에서 준 상을 받았다. 너무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안 난다. 40~50대에는 영덕에서도 그렇게 상을 받았다. 받은 만큼 많이 베풀었으니까 준 상이라 생각한다.



△우리 직원들을 내 식구처럼, 대접했다

그것이 주위에 소문이 났다. 그래서 그런지 주차 관리하시는 분도 20년이 넘었다. 직원에게 잘 해주니까, 10명 이상이 되는 직원들이 내 일처럼 잘한다. 직원들이 먹고 잘 수 있도록 모두 배려한다. 이 모든 것이 신라식당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성공의 요인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신라식당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더라. 어떤 사람이 주위 분들에게 신라식당 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 식당 오래되고 아주 좋은 식당이라고 말해 주었다고 합디다. 그래서 와서 먹고 가더니 정말 좋은 식당이라고 인정하고 확인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역시 포항에 신라왕갈비식당이 잘 한다는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근처에 돌 공장하는 윤사장이라는 분도 우리 가게 단골이었다. 오래도록 와서 서로 말도 놓고 친하게 지내는 단골들이 많이 있다. 그런 단골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경주 신라식당에서 만났다

남편은 차성만(78)씨다. 처음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경주에서 식당 할 때, 우리 가게에 와서 자주 술을 먹고 갔다. 고물쟁이 오야지 했지, 그래도 도둑질은 절대 안 하는 정직한 분이었다. 늘 말이 없고 술을 잘 마셨다. 막걸리만 84잔씩 마시고 가곤 했다. 내 나이 20살 때, 남편 될 분은 21살에 경주에서 만났다. 내가 일하느라 바빠서 정신이 없다 보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좀 틈이 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비로소 얼굴 보고 일어나곤했다. 내가 마음에 있으니까 그렇게 찾아 왔나 봐! 나를 보려고 기다리다가 술만 마시고, 기다리다가 마주치면 얼굴 보고 그랬다. 마음에 들었으니까, 나를 보호해 주고 지켜봐 주고 하는 분이었지. 그러다가 결혼은 서울의 형님을 만난 후, 서울에서 신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내 나이 몇 살인지도 기억에 잘 안 난다.

남편은 지금도 말이 없다. 술 안 드시면 절대 말이 없다. 그래도 형님은 좀 사근사근한 편이다. 우리 아들도 아버지 닮아서 말이 없다. 말이 없다고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쳐다봐라 좀 제대로 보고 사근사근하게 하라고 늘 잔소리 한다. 우리 남편은 부지런하고 손으로 하는 일은 못 하는 것이 없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잘한다. 우리 가게에도 군데군데 손 가는 곳이 많은데, 남편이 다 그렇게 봐주었다.

△경주 황오동에서 시작한 신라식당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구한테 배운 것도 없이 그렇게 식당을 시작했다. 참으로 국수를 삶아 내면서 식당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도 냉면을 삶아 내는 일은 직접 손수 해야 맛이 난다. 내가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힘이 든다. 우리 가게 이름도 처음 경주 황오동에서 신라식당이라고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 국수집 이름은 포항집이라고 했는데, 식당 허가 내면서 신라식당이라고 했다. 국수하다가 고구마 삶아서 팔다가 밥을 팔게 됐다.

어디 가서 물어보면 나를 두꺼비 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복이 있는가 보다. 자상한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그렇다. 아 평생을 살아오면서 남편이 잘한 일이 있다. 남편은 죽으면 절대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리 준비했다. 산소 자리를 신광 가는 길에 마련했는데, 경치가 너무 좋다. 미리 산소를 준비했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 남편에게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마음으로 남은 생애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싶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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