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과 개발, 구시대의 유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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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과 개발, 구시대의 유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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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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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반에 편만하던 표현이나 단어들이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가는 경우들이 있다. 효력을 다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의도적·정책적으로 퇴출되어간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건설’, ‘개발’과 같은 단어들이 이처럼 퇴출되어가는 표현들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우리나라의 정책이나 법률, 공공사업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다시피 쓰이던 이런 표현들은 언젠가부터 아예 사라져버렸다. 흔하디흔했던 표현들이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건설’이란 단어는 이제 적어도 공공부문에서는 금기어가 된듯하다. 정부기관의 명칭은 물론 각종 법령이나 정책에서도 모두 퇴출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국토건설종합계획’이다. 우리나라 국토계획을 총괄하는 최상위의 정책이다. 과거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쌍두마차처럼 국가 발전을 이끌었던 제도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건설이란 말은 쏙 빠진 채 ‘국토종합계획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다시 ‘국토기본법’이라는 애매모호한 명칭이 되어버렸다.

‘개발’의 경우도 그렇다. 특히 공공 연구기관의 명칭에 많이 들어가던 이 표현은 언젠가부터 아예 종적을 감춰 버렸다. 국토개발연구원이 국토연구원으로, 시정개발연구원이 시정연구원으로 바뀌는 식이다.

비슷한 사례로 ‘재개발’도 있다. 재개발 사업이라 하면 으레 영화 속 조폭들이 이권을 다투는 사업처럼 인식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재개발이라는 명칭 자체가 일종의 혐오 대상처럼 된 것 같다. 역시 퇴출수순을 밟는다. 그래서 재개발법은 지금은 ‘도시환경정비법’으로 예쁜(?) 이름으로 갈아타게 된다. 명칭만 봐서는 재개발이 아닌 도시 환경을 꾸미기 위한 제도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이 단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 부문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건설이나 개발이란 뉘앙스가 들어가면 구시대의 폐해와 관련된 것처럼 보는 경향마저 있는 듯하다.

물론, 그런 경향이 이해가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유례없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절, 여기 저기 마구잡이로 펼쳐지던 건설현장의 모습에 국민들은 지쳐왔던 것도 사실이다. 건설부문이 여러 재벌기업들을 탄생시킬 정도로 부의 원천이 되었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서민들로서는 수많은 건물 중 자신의 주택 한 채도 마련하기 어려운 척박한 현실이다. 피해의식과 박탈감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건설과 개발 과정에 나타난 부작용, 난맥상이 과연 건설부문만의 책임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숨 고르는 시간도 가지 않고 전진해야 했던 과거 우리나라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렇게 무리한 건설을 통해서라도 전진, 또 전진해야만 했던 한국 사회 전반이 나눠야 할 책임이지, 특정 분야가 홀로 뒤집어 써야 할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과 개발에 대한 편견은 공공 정책 부문에서 더욱 완연해지고 있는 것 같다. 건설에 해당하는 내용이 조금이라도 포함되면 ‘저건 토목사업이다’라는 식의 비판(?)에 직면하기 일쑤이다. 건설과 개발의 냄새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구시대적 산물인 것처럼 취급 받는 것이 현실이다.

건설과 개발이 ‘땅을 마구 파내고 콘크리트를 때려 붓는 사업’이라는 식의 인식은 사실 고정관념과 편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 삶터의 어떤 부분도 건설과 개발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가정의 보금자리인 주택에서부터 주말 한때를 한가로이 보내는 작은 공원까지, 따지고 보면 모두가 건설과 개발의 산물이다. 크고 작고 때로는 섬세한, 우리 삶터의 모든 조각들이 결국 건설과 개발로 이루어진다.

건설과 개발이 과거 특정 시기만의 산물일 수도 없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어떤 부문이라도, 그 기초는 건설과 개발을 통해서 닦일 수밖에 없다. 농업이건, 공업이건 또는 IT나 그 어떤 미래적인 산업부문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한국처럼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나라에서 국토를 보다 입체적이고도 집약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건설과 개발의 역할은 앞으로도 생략되기 어렵다.

물론, 지금은 중동 열사의 땅에서 건설로 국부를 창출하던 1970년대가 아니다. 다시 ‘건설공화국’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건설 외에도 부가가치가 많고 희망적인 산업부문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과 개발은 여전히 삶의 바탕을 만드는 분야이고, 국토와 도시라는 기반을 형성해가는 중요한 부문이다. 그릇이 없이는 어떤 좋은 음식도 존재할 수 없듯이, 건설과 개발부문의 기반이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흐름은 바로 잡되, 그것이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지는 않게 하는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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