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으로 사용되었던 오르세 역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철거 운명을 맞이한다. 철거를 안타까워하던 시민들은 낡은 오르세 역을 미술관으로 바꾸기로 결정한다. 작품을 소장하는 데 포화상태에 이르렀던 루브르 박물관 관계자들에 의해 19세기 후반 예술 작품들을 모아놓은 미술관으로 1986년 새롭게 탈바꿈하게 된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자 프랑스의 자랑인 작품이 밀레의 <만종>이다.
하루 세 번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기도를 했던 프랑스 바르비종의 풍습을 그린 작품이다. 밀레가 바르비종의 풍습을 그렸던 것은 그가 파리의 콜레라를 피해 바르비종으로 이주했었기 때문이며 이때부터 밀레는 농민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고 농민화가라는 별칭을 듣게 된다.
남자는 모자를 벗어 손에 쥐고 여자는 두 손을 모은 채 들판에서 기도하고 있다. 여자의 뒤로 아득히 보이는 교회의 종소리에 농부들은 일손을 멈추고 기도하고 있다.
두 사람의 밭 밑에 감자를 캐다 그만 둔 괭이가 남자 옆에 있고 감자를 담아둔 자루가 있는 손수레 그리고 여자의 앞에는 감자를 담아둔 바구니가 보인다.
노동자로서의 남자의 모습과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 당시 남자와 여자의 역할분담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밀레는 신앙심을 찬미하기보다는 농촌 종교 생활을 주도하고 있던 여자를 강조하기 위해 석양의 빛을 여자에게 향하게 했다.
<만종>은 1857년 여름 미국의 화가 토머스 G 애플턴의 의뢰로 그리기 시작한 밀레는 1859년에 완성한다. 하지만 애플턴이 1860년까지 인수하지 않자 여러 사람의 수중을 전전하게 된다. 1889년 경매를 통해 뉴욕에 있는 미국 미술연맹이 소장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이 작품이 루브르에 소장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 이후 치열한 분쟁 끝에 루브르 백화점 소유주가 1890년 그 당시 막대한 금액이었던 80만 프랑을 주고 사서 프랑스 정부에 기증함으로서 국제 분쟁을 해결한다. 후에 오르세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민종>은 오르세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된다.
<만종>은 19세기 최고의 예술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되어 작품의 예술성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만종>이 복제품을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921년 이후다. 사진과 채색 석판화로 대중화된 <만종>은 프랑스 시골 전역 최하층 집안까지 걸리게 되었으며 그 이후 달력, 광고, 엽서, 식품 상표, 접시, 휴지 등에 배경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복제품 때문에 왜곡되어 원작의 의미가 훼손되었지만 작품이 주는 경건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 회화는 물론 조각, 판화, 공예 등 19세기 다양한 예술 분야를 소개하고 있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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