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의 비애(悲哀)
  • 모용복선임기자
‘영끌’의 비애(悲哀)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0.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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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자
2030세대 내집 마련 광풍
부동산대책 잇단 실정으로
아파트값 천정부지 뛰면서
내 집 마련의 꿈 힘들어져
젊은층 ‘영끌’을 안 하고도
내집 마련의 꿈 가능하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해야

요즘 텔레비전에서 집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자주 방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좋은 집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에서부터 잘 지은 친환경 집까지 다양하다. 예전에는 잘 볼 수 없던 현상인데, 그만큼 국민들이 집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한국인의 내 집 사랑은 특별나다. 고래(古來)로 집은 한국인의 가장 큰 자산이자 로망이었다. 그래서 한 평생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하고 돈을 모은다. 대부분 국민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청춘과 인생을 소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내 집 갖기 붐이 시들해진 적도 있었다. ‘집 장만을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자성론이 대두하면서, 우리도 서구와 같이 집 소유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는 ‘무소유’가 감염증처럼 유행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경제가 어려워지고 생활이 팍팍해지면서 그래도 집 하나쯤은 붙잡고 있어야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다는 절박감이 국민 정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는다고 내놓은 대책마다 헛발질을 거듭하면서 이러한 인식이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불청객으로 인해 경제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믿을 건 오직 내 손 안에 든 것뿐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너도나도 청약전선에 목을 매고 있다.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최악 상황에서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자산인 내 집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 세대’라고 불릴 수 있는 20·30세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졸업과 취업·결혼 등 청춘에게 주어진 자유와 특권이 오히려 청춘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고 있다. 기업들이 채용문을 걸어 잠그면서 취업 문턱을 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으며, 그로 인해 청년백수들이 늘고 있다. 삼포세대((三抛世代)는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또 운 좋게 취업을 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하더라도 다니던 회사가 언제 문을 닫아 길거리로 나앉을지도 모르는 판에 조금이라도 돈을 벌 때 안전자산에 투자해 목돈을 만들려는 투자집중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요즘 주식시장이 전례 없이 호황을 누리는 것도 이러한 코로나19의 후광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한 ‘30대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 발언은 젊은이들의 비애를 살피지 못한 부적절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김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해 30대 아파트 구매열풍과 관련해 “영끌해서 집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을 생각할 때 기다렸다가 합리적 가격에 분양받는 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패닉 바잉(공황 구매)’로 인한 집사기 광풍을 경계한 말일 터지만 젊은 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집값을 안정적으로 관리 못한 정부의 잘못이 큰데도 책임을 이들에게 전가하는 듯한 모양새에 정치권과 국민들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필자의 절친(切親) 외동딸이 결혼을 했다. 현 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도 대단하지만 신혼집이 소위 전국 브랜드 아파트라는 점이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비록 서울 등 수도권에 비할 순 없지만 그래도 지방 중소도시에서 수억을 호가하는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는 것은 여간 행운아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운 좋은 젊은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성싶다. 대한민국 성인 남녀 절반 이상이 이번 생애에는 내 집을 갖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인 사람인이 성인남녀 25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991명(51.4%)이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가능하다고 한 응답자들도 내 집 마련에 평균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또 10명 중 9명이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거나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는 바꿔 말하면 여건만 허락한다면 반드시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과는 반대로 현실은 비관적이다. 부모 잘 만난 덕에 첫 출발부터 내 집을 갖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사회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 가정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는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운이 좋아 취업을 하고 돈을 모아 결혼까지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만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이 안 돼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청년 백수들은 코로나로 인해 갈 곳까지 없어 그야 말로 사면초가다. 할 수만 있다면 ‘영끌’이 아니라 ‘영팔’(영혼을 팜)이라도 해서 취업을 하고 집을 사고 결혼을 해야 할 처지다. 그러니 20·30세대들의 내 집 갖기 열풍을 비난할 게 아니라 ‘영끌’을 안 하고도 소망을 이룰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정부의 당연한 책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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