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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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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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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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와인하우스 ‘Back to Black’
오성은 작가
여과지를 통과한 커피 향이 집안 가득하다. 나는 어두운 베란다에 앉아 뜨겁고 검묽은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잠 못 이룰 줄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만 결코 커피를 끊지 못할 것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열여섯 살에 국립청소년 재즈 오케스트라에서 ‘Moon river’를 부르던 소녀는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하고, 세계를 사로잡고, 재즈를 부흥기 시절로 되돌려놓곤, 돌연 생을 떠나버린다. ‘돌연’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인생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나 등장부터 죽음까지 그의 모든 행보가 돌연한 것이 사실이다.

그녀가 듣는 모든 음악은 재즈를 통과한다. 에이미는 재즈 필터와 같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의 음악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노래는 어둠 위에 진하게 쓴 검은 글씨 같아요. 왜 이리 달콤한 거죠? 좋았던 기억도 미웠던 기억도 모두 그 어둠 속에 존재하는 기분이에요. 도대체 뭐라고 쓴 거죠?’

허망한 질문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그런데 그녀의 노래도 때때로 질문을 던진다. ‘Love is a losing game(사랑은 지는 게임)’은 단정이 아닌 질문 같다. ‘Back To Black(어둠으로 돌아가)’은 망설이다 차마 하지 못한 되물음 같다. ‘Rehab(중독치료)’은 구해달라는 신호이자 요청 같다. 그 질문들은 어디에 닿고 있는가. 그녀는 대답을 듣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답을 구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뤄져 있잖아요. 답을 구하지 못하게끔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그녀가 내 친구였더라도 말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해줘야 했다. 그녀가 불러온 노래가 나에게는 답이 되었다는 걸 분명히 말해줘야만 했다. 그녀는 외따로이 떨어진 섬처럼 고립되어 미쳐간다. 결국,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하지 못한다.



-어둠으로 돌아가

내가 아는 재즈는 거의 블루에 가까운 색이지만 이 사람의 재즈는 온통 블랙이다. 그녀는 숨기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노출한다. 그러나 재즈 보컬리스트 역시 세션의 일부일 뿐이다. 브라스 밴드와 드럼과 기타 뒤에 숨어 박자를 맞추고 리듬을 즐길 시간을 줘야 한다. 스포트라이트는 잠시 꺼도 된다. 마이크 볼륨을 내려도 된다. 그녀를 모른 척, 못 본 척해도 좋겠다. 이 천재 아티스트는 자신이 나올 순간을 온몸에 각인한 상태이기에 스스로 어둠을 뚫고 나올 것이다. 다시 무대 앞에 설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고, 노래하고 싶은 사람과 노래하는 환경이 곧 성공이라고 에이미는 말한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는 그릇은 곧 음악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목숨마저 내어줄 정도로 순결한 마음의 그녀는 ‘날씨가 어땠는지, 그의 목에서 풍기는 냄새가 어땠는지’ 기억할 정도다. 사랑은 음악은 살아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 같은 선상에 있다. 하지만 사랑이 떠나가자 우울을 응축한 슬픔과 분노에 온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는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간다. Back to black, back to black…….



-에이미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오직 2개의 앨범만으로 세상에 존재하며,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인류가 남아 있는 한 재즈를 듣고 즐기는 한 그녀의 목소리는 살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녀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다른 앨범으로 바꾸어버린다. 톤암을 올리고, 그녀의 바이닐을 감추어버린다. 끝끝내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녀가 살아온 삶의 무게와 음악의 무게가 버겁게 들려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어땠을까. 그녀가 지탱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그녀가 지탱하지 못한 건 또 무엇 때문인가.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오롯이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울고 웃을 뿐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재즈란 즉흥이자, 심연이고, 되돌아오는 일이자, 어긋나는 과정이다. 그녀는 사랑 앞에서 두 번 깨어나지 못했고, 목소리는 검은 어둠에 깊숙이 잠겼다.

커트 코베인, 조지 해리슨, 쳇 베이커 혹은 유재하 등 세상을 떠난 뮤지션을 만나는 날이면 참 이상하게도 말수가 줄어든다. 음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자 해서일까, 아니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하지만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내 곁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함께 청취하고 있는지도. 아니면 여전히 자신들의 방식으로 곡을 만들고 있는 건지도.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그렇게 있으면 참 다행일 것 같다. 어둠에 있다해도 나는, 우리는, 당신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랑에게 늘 지는, 그 짙은 목소리를.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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