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개미지옥' 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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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개미지옥' 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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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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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니야.

코로나 블루로 심리적&경제적으로 위축되다보니 ‘이전과 다른 삶’ ‘씀씀이를 줄이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에 대한 소구가 높아졌다는군. 지인 중 한 명도 이런 각성을 했다기에 물었지. 어떤 방식으로? 대답인즉 ‘당근**’을 적극 애용하기로 했대. 개인정보 노출 염려 없이 비대면으로 물건을 비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당근**’이라면 나도 좀 알아. 이젠 불필요해진 고가의 취미용품들을 처분하기위해 앱을 깔았던 적이 있어. 그때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지. 누군가가 내놓은 중고품과 설명글, 이전 판매목록, 이용 시간 등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드문드문 파악되더라. 당신이 먹은 음식이 곧 당신을 말해준다는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렝의 말을 중고마켓 식으로 바꿔보면 ‘당신이 내놓은 물건이 당신의 라이프사이클을 드러낸다’고나 할까.

거래 자체가 바코드가 돼서 개인이 스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생각해보니 당연한 거였어. 중고물품은 크건 작건 사용자의 삶의 일부였으니 그의 취향을 고스란히 설명해주잖아. 택배·문고리 거래 등 비대면이 가능한 시스템이었지만 개인의 취향과 선호도가 여과 없이 노출된다는 점에서 굳이 말하면 득보다 실이 있어 보였어.


그렇다면 내 삶의 일면을 드러내는 중고거래가 진정 비우는 삶을 실현시켜줄까? 장담하건대 아니라고 봐. 물건을 팔기만 하는 곳은 소비자에게 ‘돈을 썼다’는 인식만을 남기지만 물물거래시장은 달라. 모두가 셀러이자 바이어야. 잘 팔았다는 만족감이 들수록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고 싶어 해. 파는 만큼 사게 되는 곳, 합리적인 실거래라는 새로운 형태의 쇼핑중독을 낳는 곳, ‘중고=경제적’이라는 자기 최면에 빠져들게 되는 이곳은 앱 버튼 하나면 열리는 ‘황홀한 개미지옥’이지.

나는 오로지 셀러로서만 이용한다는 자부도 아직 일러. 한두 번 성공적인 거래를 하고나면 물건 빠진 자리를 채울 ‘중고 같지 않은 중고’를 찾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비워내겠다는 강박은 반드시 채우고 싶다는 허전함으로 치환돼. 우리는 타인의 중고품들로 빈자리를 메꿔가고 있을 뿐이야.

미니멀리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가치한 물건이 없는 삶이야. 비워내 휑한 삶이 아니라 ‘비운 자리’마저 지워버리는 삶. 지인에게 내 경험을 해주었더니 자기도 처분할 것만 팔고 나오는 전략을 세우겠다는 데, 글쎄다. 지름신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지인이 개미지옥에서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을까. 아직 미니멀리스트의 ‘미’자도 꺼낼 수 없는 상태로 덥석 ‘고것’(당근의 꿀맛)을 물어버리는 건 아닐까. 안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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