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로 남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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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로 남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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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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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를 들으며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우연히 같은 열차 칸에 탑승한 마틴과 루디는 공교롭게도 같은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다. 옷차림도 성향도 다른 그들은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듣게 된다. 뇌 속의 종양이 마틴을, 골수암세포가 루디를 지배할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선고받는다. 한 병실에 배정받은 마틴과 루디는 서랍장 안에서 데킬라를 발견하고, 곧장 레몬과 소금을 곁들이며 목을 축인다. 죽음 앞에서 병실은 감옥 같기만 하다. 마틴은 루디가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말한 바다를 찾아가자고 제안하고 곧장 실행에 옮긴다. 술에 취한 채 무작정 올라탄 클래식 자동차를 이끌고 급기야 은행을 털기도 한다.

한편 이들이 훔친 자동차 안에는 조직 보스에게 전달되어야 할 거금이 들어 있다. 이제 조직원들은 마틴과 루디를 쫓기 시작하고, 경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조직원과 경찰은 어딘가 어리숙하다 못해 순수하기까지 하다. 마틴과 루디와 연관된 모든 이들이 미숙한 아이처럼 보인다. 총알이 빗발치는 총격전 속에서도 누구도 다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는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조직의 보스 역시 마틴과 루디 앞에선 천하태평일뿐더러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해 조언하기에 이른다. 크고 작은 소동 속 인물들은 마틴과 루디를 바다로 이끄는 조력자처럼 보인다. 그들은 결국 바다에 도착한다. 황폐한 모래사장과 거친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그때 마침 이 노래가 들려온다. 천국의 문에 노크를…….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in’ on heaven’s door.’



노크는 노크로 남아야만 해요



마틴은 바다 앞에서 쓰러진다. 악성 뇌종양으로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마틴을 구해냈던 루디는 이제 손을 내밀지 않는다. 루디 역시 곧 그렇게 될 운명이다. 두 사내의 뒷모습은 처연하다. 드센 바다는 죽음의 얼굴인가, 남은 삶의 생기인가.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천국은 죽음 너머의 세계이고, 문은 바다이며, 노크는 그들이 바다를 찾아가는 소동, 결국 이 영화의 전부다. 밥 딜런의 노래가, 독일 밴드 ‘Selling’에 의해 변주되며 바다를 두드린다.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는 샘 페킨파의 서부극 <관계의 종말>(1973)에 사용된 이후 반전 운동의 노래로 자유의 노래로 급기야 독일 감독 토머스 얀의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7)까지 이어진다. 밥 딜런은 포크 장르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으며 결국 로큰롤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과 자신을 향한 저항은 결국 전쟁에 대한 저항으로 죽음에 대한 저항으로 나아간다. 음악은 메시지가 되었다가 멜로디가 되었다가 시가 되기도 한다. 음악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사람의 감정이 곧 음악이 된다.



다만 노크는 노크로 남으면 좋겠어요



어느 밤이 노래가 된다면, 참 아름다울 것 같다. 어느 영화가 음악이 된다면, 이보다 멋진 일도 없을 것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영화이자 음악이고, 죽음의 문 앞에서 인사하는 노크다. 그러나 노크는 노크로 남았으면 한다. 노크한 문이 영영 닫혀 있을 수는 없겠지만 아직은 열리지 않으면 좋겠다. 그 문이 오직 당신에게만 열리는 문일지라도 아직은 노크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우리는 마틴과 루디가 여기, 바다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누구도 그들을 방해해선 안 되며, 누구도 슬피 울어서는 안 된다. 마틴과 루디는 죽음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래를 아쉬워하고 있을까,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막연한 시간은 미래를 어설프게 예감하고, 한정된 시간은 과거를 희미하게 어루만진다. 그러나 죽어가는 이는 오직 현재를 직시한다. 앞으로 나갈 수도, 뒤도 돌아갈 수도 없는 때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틈을 벌려 시간을 유예하는 일이다. 생과 죽음 사이의 공간, 텅 빈 자리, 틈, 어두운 구멍으로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오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에는 담배와 데킬라, 바람과 파도, 사랑과 우정, 음악과 시와 영화가 있을까. 다만 노크는 노크로 남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음악이 끝날 때까지는.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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