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노랑·파랑색 만으로 다양함을 표현해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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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노랑·파랑색 만으로 다양함을 표현해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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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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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부터 포항아카데미극장에서 40년간 극장화가로 활동
그림보고 영화보러 오는 관람객 많아 ‘창의력·포인트’가 생명
간판 하나에 덧바르고 덧바르고… 남는 그림없어 아쉬움 남아
안경모 화가
1988년 당시 안경모 화가가 그린 아카데미극장 앞 간판 그림.
그림을 그린 흔적들.
물감과 화구.

 

 

그림 인생 이야기 - 화가 안경모<상>

△1973년부터 포항아카데미 극장 그림 그린 안경모 화가

예전에는 극장에 간판을 그리는 직업이 있었다. 금세기 최고의 작품, 그랑프리 수상작! 설 특선 프로, 크리스마스 특선 등 화려한 문구와 함께 생생하게 그려진 영화의 한 장면은 지나가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극장 안으로 돌리게 하는 가장 좋은 홍보수단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 멀티플렉스, 복합영화관 시대에 들어서면서 대형 실사 프린터가 간판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그림을 그리던 극장 화가들이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1973년부터 포항아카데미 극장에서 그림을 그렸다. 원래 고향은 대구인데 부산에서 처음 그림을 배우고 19살 때,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광복동 동아극장에서 1959년도쯤 되었을 것이다. 대구에서는 대구극장, 한일극장, 송주극장, 중앙극장 등 변두리 극장 등 많은 곳에서도 일을 했다. 이쪽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먹고사는 일이 관건이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물론 학교 다닐 때부터 그림을 좋아한 것도 있었다.

부산에서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다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포항으로 오게 됐다. 뭐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했다. 예술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한 게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다른 일에 비해 돈을 많이 주는 편

집에는 위에 형이 있고 그리고 나, 그렇게 형제 밖에 없다. 아카데미극장에서 일할 때 사회 자체가 뭐 지금처럼 밝은 사회가 아니었다. 문화시설이 없었던 시절, 사람들이 갈 곳이 없었다. 극장 밖에는 갈 곳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극장 밖에 작업 장소를 제공해 주고, 조수도 붙여 주었다. 작업 진행은 경력에 따라서 스케치, 배경, 글씨 등으로 나누어서 작업을 했고, 특히 주인공 얼굴은 나의 몫이었다. 다른 일에 비해서 돈을 많이 주는 편이었다. 뭐 작품이라고 할 것이 없다. 작업을 하고 나면 그 위에 덧칠해 다음 극장 프로를 그리는 것이 일이니까 뭐 그냥 말 그대로 일일 뿐, 남는 것이 없다. 그리고 덧바르고 그리고 덧바르고 그러니까….

지금껏 남은 것이 없다. 뭐 사진을 찍어 두기를 했나, 영화 상영이 끝나고 그 위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새 프로를 그렸다. 엄청나게 많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간판이 재활용되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다. 작업이 만만치 않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화폭이 대략 가로 몇 십m에 세로 5m 정도의 어마어마한 사이즈에 있다. 그것도 유화 대신 거친 페이트를 사용해서 그림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비용 때문에 빨강, 파랑, 노랑 등 한정된 컬러만으로 다양한 색상과 인물의 표정을 살려야 하기에 오랜 시간 동안 훈련과 연습을 통해 얻은 극장 간판쟁이들의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아카데미 극장이 끝날 때까지 그렸다

복합극장이 생겨 나기까지 근 40년 정도 그림을 그렸다. 한 극장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우니까, 당시 소극장들이 많았지, 예술극당, 명보극장, 가고파극장, 청솔극장, 죽도소극장의 일을 받아서 했다. 소극장 하는 분들도 따로 그림 그리는 직원을 둘 수 없으니까, 아르바이트로 일이 들어오곤 했다. 주로 작업은 낮에 했다. 사진으로 보관된 것이 없다. 내가 생활이 그렇다 보니까 보관되는 것이 없어서 아깝다.

가장 보람된 일, 좋은 기억은 없다. 돈 벌어서 다른 곳에 다 들어가 버렸다. 남은 것이 없다. 대구에 ‘토색회’라고 극장 그림 그리다 순수미술하는 모임이 있다. 취미로 그림을 해서 매월 그림을 그리는 모임을 하고 있다. 포항에는 그런 단체는 없다. 지금도 이 모임은 계속하고 있다.




△해병대 북문~포항공항 진입로 벽화그림

바둑은 우연하게 하다보니까 시작하게 됐다. 취미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기원을 하게 됐다. 지금도 벽화나 초상화 그림을 그려 주고 있다.

술집이나 유흥가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포항시 청림동 해병대 북문에서 포항공항 진입로 가는 길, 1260m에 벽화그림을 그렸다. 10개 테마 65종류의 벽화로 전체적인 그림은 내 머리속에서 다 구상해서 그렸다. 포항을 상징하는 시 로고 및 해병대 테마, 첨단과학, 항만물류, 포스코 야경, 레저 및 스포츠, 연오랑 세오녀와 포항의 4계절 등의 테마를 선정해 작업했다.

초상화 그림은 단골들이 있는데, 이름을 다 기억할 순 없다. 집에 붙여 놓기도 하고 영전그림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초상화는 유화로 그린다. 시간은 열흘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사진을 가지고 와서 그대로 그려 달라고 한다. 비용은 100만원 선이다. 최하가 50만원이다.



△영화를 좋아해서 새로운 프로 나오면 다 본다

포항 아카데미극장에서 ‘벤허’라는 영화를 상영했을 때, 나는 부산에 있었다. 초창기라 굉장히 오래된 일이다. 포항아카데미는 포항사람들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극장 주인이 사업을 하다가 망해 버렸기 때문에 보존할 수 없다. 복합극장이 들어서니까, 대기업과 경쟁을 하다보니, 살아남을 수가 없다. 방법이 없다. 롯데시네마는 포항극장 자리에서 시작했다. MBC에서 극장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니까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나는 평생을 영화관에 있었으니까 무료로 다 보았다. 포항의 타 극장에도 가면 얼굴을 다 아니까 그냥 들어가서 보면 되었다. 난 영화를 좋아해서 새로운 프로가 나오면 그냥 다 보았다.

그림을 그릴 때 사진도 보고, 극장 포스터도 보고 그린다. 그래서 옛날에는 지나가다가 간판을 보고 영화보러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극장간판 그림을 잘 그리면 장사가 잘 되었다.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에 극장주 입장에선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서 대우도 잘 해 주었다.

예를 들어 간판에 김지미 얼굴을 그려야 하는데, 다른 사람 얼굴을 그려 놓으면 극장에 사람들이 들어가겠느냐고…

그림은 내 창의력이다. 사진이나 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이 영화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그리는 것이 관건이다.

포인트를 전쟁 영화 같으면, 간판만 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 그런 정도로 그려야 한다. 그런 느낌이 와야 영화를 보러 온다. 사진이나 포스터를 보면 느낌이 온다. 특히, 여배우의 특징을 잘 살려서 그렸으니까 초상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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