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덮인 다리'와 매디슨 카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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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덮인 다리'와 매디슨 카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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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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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시도였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이맘때, 나는 천재들의 흔적을 쫓아 뉴욕 시내를 씨줄과 날줄로 누비고 다녔다.

수십 곳에 달하는 취재 리스트 중에서 뉴욕시와 뉴욕주를 크게 벗어나는 장소가 두 곳 있었다. 하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제롬 샐린저가 은둔하다 눈을 감은 뉴햄프셔주 코니시이고, 다른 하나는 극작가 아서 밀러가 마릴린 먼로와 살았던 코네티컷주 록스베리였다.

이른 아침, 뉴욕 맨해튼 32번가에서 자동차를 대절해 코디네이터와 함께 뉴햄프셔를 향해 출발했다. 미국 북동부 끄트머리에 있는 주가 메인이다. 뉴햄프셔는 메인 바로 아래에 있다.

코니시는 뉴햄프셔가 버몬트와 만나는 경계선에 있는 작은 마을. 어리석게도, 나는 그곳에 가기만 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코네티컷과 매사추세츠를 지나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버몬트로 들어갔다. 버몬트의 작은 동네 윈저를 지나면 뉴햄프셔다.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버몬트와 뉴햄프셔의 경계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코네티컷강이다.

코니시는 이 강을 건너야 나온다. 그런데, 막상 코니시에 들어서니 그곳은 첩첩산중이었다. 내가 상상한 마을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다. 산 하나에 집이 한두 채씩 숨어 있었다. 은둔하기에 천혜의 환경이었다. 결국 두어 시간을 헤매다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난다 긴다 하는 파파라치들도 쉽게 찾지 못한 샐린저의 흔적을 확인하겠다고 하룻강아지처럼 덤벼든 꼴이었다.

왕복 8시간이 걸린 뉴햄프셔 취재가 허탕으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네티컷 강을 건너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지붕 덮인 다리’(Covered Bridge)와 조우했기 때문이다. 은둔의 작가 샐린저를 만나러 가는 그 여정에서 텍스트와 영상으로만 보아온 ‘지붕 덮인 다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코니시로 가는 지름길은 버몬트의 윈저에서 코네티컷강을 건너는 길이다. 뉴욕에서 코니시로 가려면 누구나 이 루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지붕 덮인 다리’는 미국 동부 토박이들에게는 일상이겠지만 서울 사람인 나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저속으로 다리를 건넜다. 차도와 인도를 겸한 다리는 일차선. 특이한 것은 상판과 벽면이 모두 나무로 되어 있었다. 나무상판은 닳고 닳아 반들반들했다. 군데군데 말똥(馬糞)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말똥은 나무 바닥에 달라붙어 마분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다리 안은 조금 어두운 편이었다. 자연 채광과 다리 양쪽 입구에서 들어오는 불빛이 다리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니 입구 옆에 차를 대놓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작은 안내판에 ‘이 다리가 미국에서 가장 긴 지붕 덮인 다리’라는 설명이 보였다. 다리 입구에는 이런 주의문이 적혀 있다.

코네티컷 강에 놓인 코니시-윈저 지붕 덮인 다리. 사진=조성관 작가 제공

‘말에서 내려 걸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벌금으로 2달러를 내야 합니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지붕 덮인 다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를 통해서다. ‘키스 다리’라는 별명을 지닌 ‘지붕 덮인 다리’는 이전에도 미국 문학에 간간이 등장하곤 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에도 지붕 덮인 다리가 나온다. 하지만 ‘지붕 덮인 다리’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단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다.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미국에서 출간된 게 1992년. 책 표지에 ‘지붕 덮인 다리’ 그림을 실었다.

‘지붕 덮인 다리’는 북미 대륙 중동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교량이다. 범위를 더 좁히면,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는 북동부에 거의 몰려 있다.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 지방과 캐나다 온타리오·퀘벡·뉴브런즈윅이 그곳이다.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지붕 덮인 다리는 1805년 필라델피아의 퍼머넌트 교. 이후 ‘지붕 덮인 다리’가 집중적으로 건설된 것은 1825년부터 1875년까지다. 이 기간에 약 1만4000개의 ‘지붕 덮인 다리’가 놓였다.

여기서 발명가 한 사람이 등장한다. 시어도어 버르(Theodore Burr). 이 발명가가 1804년 아치형과 왕대공(王臺工)을 결합한 ‘버르 아치’를 발명했다. 버르는 1817년 ‘버르 아치’ 구조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다. 이때부터 북미에 ‘지붕 덮인 다리’가 퍼져나갔다.


캐나다에서는 1900년대 초반부터 ‘지붕 덮인 다리’가 집중적으로 놓였다. 현재 캐나다에는 퀘벡 82개와 뉴브런즈윅 58개를 비롯해 200여 개가 살아남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지붕 덮인 다리’는 뉴브런스윅의 하트랜드 다리로 길이가 391m에 이른다.

‘지붕 덮인 다리’는 주로 사람의 왕래가 적은 외진 장소에 있다. 강이라고 해도 강폭이 좁은 곳에 설치되었다. 눈과 비바람에 노출된 목조 다리는 20년 이상을 가기 힘들지만 지붕을 씌우면 다리 수명이 100년 이상 늘어난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 존재하는 ‘지붕 덮인 다리’는 1600여 개에 불과하다. 왜 이렇게 숫자가 줄어들었나. 다리가 놓인 곳이 외딴 장소가 많다 보니 낡은 채로 방치된 경우가 많았고, 또 훼손과 방화 대상이 된 결과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 ‘지붕 덮인 다리 보존협회’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내가 샐린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건너게 된 ‘지붕 덮인 다리’는 알고 보니 역사적인 다리였다. 1866년에 세워진, 길이 137m로 미국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다. 현재 이 다리는 뉴햄프셔의 문화유산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샐린저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나를 묶어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내가 코니시를 찾아 그 먼 낯선 길을 나설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이 문화유산을 경험하는 기회를 영영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지붕 덮인 다리는 샐린저가 준 선물이었다.

다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작가 로버트 제임스 월러는 아이오와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매디슨 카운티에는 ‘지붕 덮인 다리’가 여섯 개 있다. 시다, 로즈먼, 할리웰 등. 소설 원제에 ‘Bridges’(다리들)이라고 한 까닭이다.

어느 날 월러는 매디슨 카운티의 시다(Cedar) 다리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설의 영감이 떠올랐다. 소설에서는 이 다리를 보다 낭만적인 이름인 로즈먼 다리로 불렀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들 역시 상판이 모두 나무로 되어 있다.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다리는 아이오와의 명소가 되었다. 영화로까지 나오면서 많은 여행객이 영원한 사랑을 맺어준 이 다리를 보러 매디슨 카운티를 찾아왔다. 동시에 이 다리는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2002년에 이어 2017년에도 방화로 불에 타버렸다.

부모 세대가 책과 영화로 만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그 자식 세대는 뮤지컬로 새롭게 만나는 중이다. 나흘간의 사랑을 평생 마음속에 간직한 채 서로를 그리워한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

두 사람은 각기 유서를 남겼다. 화장해서 유해를 ‘지붕 덮인 다리’에서 뿌려 달라.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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