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발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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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발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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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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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나서면 온통 고개 숙인 사람들뿐이다. 대합실, 카페, 버스나 지하철, 심지어 공원이나 길을 걸으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모두 휴대폰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2007년 애플이 인터넷 검색, 전화, 게임, 아이팟 등 대부분의 데스크톱 기능을 구현한 아이폰을 내놓자 사람들은 시공간과 거리의 장벽이 무너진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며 환호했다. 광범위하게 분산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의사를 소통하고 공유하는 세상은 더 공정해지고 정의로워질 것이며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삶을 한층 윤택하게 할 것이라 기대했다. 많이 배운 자가 독점했던 지식창고의 자물쇠도 풀려버렸다. 사람들은 첨단기기를 만지작거리며 드넓은 세상을 손안에서 마음껏 구가하고 만끽했다. 인터넷 바다를 항해하느라 외로울 틈도 없었다. 지루하거나 가슴조이는 기다림은 고루한 옛말이 되어버렸다.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졌다. 검색이라는 만능키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명실공히 사이버공간이 리얼리티 공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서서히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사기·사이버 금융범죄·불법컨텐츠·음란물 등의 범죄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진짜 큰 문제는 알게 모르게 사이버공간이 온 세상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른바 ‘사이버 발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속성과 개방성, 광역적 특성을 가진 사이버공간이 현실세계를 통합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현상의 역작용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심각한 분열과 대립을 내밀하게 유발했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념·정치·문화적 관점이 같은 사람들끼리 집단을 형성하여 파벌을 만들고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적대시하며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실을 깊게 들여다보면 스마트 폰이 보급되기 이전보다 오히려 더 견고한 격벽이 생기고 더 획일적인 군집이 우후죽순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편 아니면 무조건 배타하거나 적대시하는 이런 현상은 인류공영의 가치를 사멸시키기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최고의 IT강국으로 불리는 만큼 사이버발칸화 현상이 우려할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시대에서 포털사이트의 공정성과 공익적 책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뉴미디어의 중심이 되는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사이트는 뉴스를 생산하지는 않으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여 다양한 정보 및 시사내용, 대량의 이슈 등을 전달하는 매개이자 플랫폼으로서 속보성, 쌍방향 피드백과 커뮤니케이션(댓글로 자신의 의견 피력)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대다수의 국민이 하루에도 몇 번 혹은 수십 번 실시간으로 접속한다. 따라서 포털사이트 역할의 중요성은 활자신문매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만약 특정포털이 특정성향을 지니고 있어 입맛에 맞는 뉴스를 골라 메인에 게시하거나 순위를 조작한다면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 자유의 공정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국민발칸화(발칸화: 서로 적대적이거나 비협조적인 여러 개의 작은 단체나 지역으로 쪼개지는 일)를 촉발하는 해악을 저지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앱의 진입로 역할을 하는 포털이 공정성을 유지하는지 아닌지를 국민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음을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어스름이 깔린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세월이 갈수록 전자기기의 성능은 더욱 고도화되어 더 빨리 더 광범위하게 온갖 정보와 이슈들이 우리의 손안으로 들어올 것이고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텐데, 갈수록 왜곡되고 비민주화·패거리화 되어가는 사이버세계의 역기능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면 나를 바꾸라고 했듯 결국 국민 스스로가 거짓과 선동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진실을 통찰할 수 있도록 자질을 함양시키는 게 해답이 아닐까.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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