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語에 녹아든 삶의 낯선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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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語에 녹아든 삶의 낯선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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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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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장석주 지음 l 세계사 l 6000원

 
세상과 생을 마주한 긴장과 자기반성 담겨  
 
 시와 소설, 산문과 평론의 경계를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벌여온 시인 장석주(53) 씨가 열세 번째 시집 `절벽’(세계사 펴냄)을 출간했다. `붉디 붉은 호랑이’ 이후 2년 만에 내놓는 신작으로 56편의 시가 담겨있다.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과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등단한 시인은 30여년 간 꾸준히 시집을 내왔지만 “햇수는 옹골차게 채웠으나 소출은 빈곤하고 보람도 초라해서 벽에 머리를 찧기 일쑤”(`자서’ 중)라며 자신을 낮춘다.
 어느덧 오십대 중반을 바라보는 시인은 “눈물샘이 마르니 꿈도 마른다./ 꿈이 마른다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다./ 밥알이 입 안에서 까실거리는 생활,”(`분교 근처’ 중)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허리를 곧추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명자나무’ 중)을 당부하며 여전히 세상과 삶에 대한 긴장과 자기 반성을 거두지 않는다.
 “늙은 어머니가 새벽에 깨서/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동안/ 밀실에서는 육해공군의 머릿수와/ 野砲와 장거리미사일을 대폭 늘리려고/ 머리를 맞댄 채 긴 회의를 한다./(중략)/ 적란운과 별똥별과 오솔길은 모르고/ 단것과 뇌물과 회의에/ 빠진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절벽’ 중)
 죽음과 어머니에 대한 시어도 자주 눈에 띈다. 노래방에서 옛노래를 열 곡이나 부르는 여든두 살 어머니를 보고 “돌아갈 길 아득해 힘을 비축하는 걸까”(`赤璧’ 중)생각하고 소쩍새 울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커피를 마시다가도 “다시 혼잣말로 ’죽음!`해본다.”(`달의 뒤편’ 중)
 하지만 시인이 생에 대한 긍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강하게 갈망한다. 혼자서 삶은 감자를 천일염에 찍어 먹으며 “삶은 감자와 천일염만 있다면/ 나, 오동나무에 보랏빛 꽃 필 때/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다.”(`엽낭게의 내밀한 살림’ 중)고 고백한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끓이고 명상을 한 뒤 시 한 줄 끼적인다는 시인은 쉼 없이 쓰면서 죽기 직전 노래가 가장 아름답다는 백조가 되기를 꿈꾼다. 우리에게도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비겁하게 피하지 말 것. 저녁마다 술집들을 순례하지 말 것.(중략) 딱딱한 씨앗이나 마른 과일을 천천히 씹을 것. 다만 쐐기풀을 견디듯 외로움을 혼자 견딜 것.”(`명자나무’ 중)
 
 
 
 
리스본行 야간열차
황인숙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6000원
 
 
삶과 사물의 본질 발랄한 상상력으로 풀어
 
 
 “조금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을 듯한/ 먼 하늘에/ 태양이 벗어놓은 허물/ 둥실 떠 있다/ 조금쯤 바람 빠진 듯/ 맥없이 부푼 주홍빛 풍선/ 맥놀이 퍼지는 하늘// ’그래, 이대로 이렇게 사는 거지, 뭐!`/ 버럭 중얼거리며/ 어리둥절하다/ 뭘?/ 몰라, 가슴 쓰리다.”(`여름 저녁’ 전문)
 황인숙(49)은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발랄한 상상력과 생생하고, 살가운 시어로 삶과 사물의 본질과 이면을 보여줘온 중진 시인.
 그가 `리스본行 야간열차’(문학과지성사 펴냄)라는 독특한 제목의 여섯 번째 시집을 냈다. 2003년 발표한 `자명한 산책’ 이후 4년여 만에 나온 시집으로 57편의 시를 묶었다.
 내용과 형식의 간결함이 도드라지는 이번 시집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시적 자아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시집의 얼마쯤은 오후 4시 무렵의 몹시 피로한 시적 화자가 차지하다가, 또 얼마쯤은 구슬프고 서정적인 파두(fado.포르투갈 민속음악)가 주인공이다.
 지붕 위를 거니는 사람과 고양이들이 제 목소리를 얻어 말하는가 하면 버지니아울프 같은 작가의 입을 빌려 내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시집 역시 고양이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은 여전하다. “죽을 것같이 피곤하다고/ 피곤하다고/ 걸음,걸음,중얼거리다/ 등줄기를 한껏 펴고 다리를 쭉 뻗었다”고 노래하는 `묵지룩히 눈이 올듯한 밤’ 같은 시에서는 사람과 고양이의 구분이 없어지기까지 한다.
 포르투갈에 여행갔을 때 마음을 채웠던 느낌도 고스란히 시어에 담겼다.
 마치 땅끝으로 달리는 듯한 리스본행 야간 열차 안에서 느낀 감정이 너무 강렬했기에 시집의 제목도 `리스본行 야간열차’로 정해졌다.
 공교롭게도 몇 달 전 똑같은 제목을 가진 어느 외국 소설가의 소설이 번역 출간된 터라 출판사측에서는 다른 제목을 조심스레 권유했지만 시인은 이 제목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부제를 `리스본行 야간열차’로 달은 `파두’라는 시에서 열차가 항구도시 리스본으로 다가가는 것을 아기가 포근한 엄마 뱃속을 벗어나 종착지인 세상에 나오는 것에 비유한다.  “잠이 걷히고/ 나는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어떤/ 암울한 선율이/ 內分泌됐다/공기가 으슬으슬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니/ 한층 더 으슬으슬하고 축축한/ 어둠이었다// 끝없이 구불거리고 덜컹거리는/ 産道를 따라/ 구불텅구불텅/ 덜컹덜컹/ 미끄러지면서// (이 파두, 숙명에는 기쁨이 없다.)// 나는 점점 더/ 부풀어 올라/ 탱탱해졌다/ 오줌으로 가득 찬/ 방광처럼.”
 
 
 
가출한 형, 치마를 입고 돌아오다
 
 
하모니 브러더스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고향옥 옮김 l 사계절 l 8000원

 
 
 가출한 형이 어느 날 집에 돌아왔다. 분명히 기쁜 일이긴 한데, 어딘가 좀 이상하다. 허리까지 기른 머리, 연한 오렌지빛 입술, 갈색 아이섀도를 바른 눈, 거기다 크림색 원피스까지 입고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모습이라니.
 우오즈미 나오코의 청소년 소설 `하모니 브러더스’(사계절 펴냄)는 지극히 모범적인 열네 살 소년의 집에 7년 전 가출한 형이 `여장 게이’가 돼서 돌아오는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제 막 명문 중학교에 입학한 히비키의 가족은 모범적이고 건실한 가정의 표준이다. 성실한 직장인인 아버지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엄마는 집 안팎을 정성스레 가꾸는 교양있는 주부다.
 그러나 여장을 하고 돌아와 뻔뻔하게 3주간 집에서 휴가를 보내겠다는 형으로 인해 `행복해 보이는’ 이 가족에 균열의 조짐이 생기기 시작한다.
 엄마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형의 말은 모두 무시하고 형이 쓴 욕조를 박박 닦기까지 한다. 그에 비해 아빠의 반응은 오히려 솔직하다. “그런 토할 것 같은 꼬락서니는 집어 치워!”라고 소리를 지르니 말이다.
 하지만 히비키는 조금 다르다. 3주만 있으면 형이 사라지니 공부에 전념하자고 마음을 다잡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형의 행동에 신경이 쓰인다.
밤 산책을 하며 소리를 주워담는 형이, 공기의 흐름과 문이 끽끽거리는 소리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알고 이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형이 점점 좋아진다. 남과 다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형은 엄마 아빠의 말처럼 경쟁에서 낙오된 것이 아니라 경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책은 모범생과 여장 게이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지닌 형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차이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하모니 브러더스’가 돼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비춘다. 청소년 소설에서 쉽게 다루지 않는 `성(性) 정체성’ 문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
 고향옥 옮김. 132쪽. 8000원.  
 
>>신간 짧게읽기
 
 
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
그레첸 루빈 지음·윤동구 옮김 l 고즈윈 l 1만2800원
 
 
 자칭 `처칠’ 광인 저자가 영국인의 사랑을 받은 지도자인 처칠의 전기수백권을 읽고 주제 40가지를 추려내 다시 글을 썼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지만 실패한 정치인이자 폭력을 선호하는 전쟁광이기도 하고 명연설가이자 재담꾼이지만 술꾼에 울보였던 처칠의 복잡한 면모를 보여주고자 애썼다.
 `처칠의 최대 장점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주제에서는 처칠이 일상적 언어로 평범한 연설을 하는 것을 즐겼다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처칠이 즐겨 쓴 짧고 간결한 문장은 장황한 문장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짧게 말하는 게 최고지. 그중에서도 오래된 말일 수록 좋아”, “저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런던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혜택을 준 적은 없습니다” 등.
 처칠은 역사 속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구하기도 했다. 1940년 8월 저녁 그는 나치군이 바다를 건너려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느닷없이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고즈윈. 320쪽. 1만2천800원.
 
 
 
한달 후 일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최정수 옮김 l 소담 l 9000원

 
 
 `슬픔이여 안녕’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여류 작가 사강의 소설.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여주인공 조제가 좋아한 책으로 등장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각자 애인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가슴에 품는 아홉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본질과 인생의 덧없음을 그렸다. 탐미주의적인 20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경향이 드러나는 섬세한 심리묘사가 특징적이다.
 `달이 가고 해가 가도’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본이 출간된 적이 있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마음의 파수꾼’과 `어떤 미소’도 함께 출간됐다.
 소담. 198쪽. 9천원.  
 
 
>> 함께읽는 어린이책
 
 ▲별밤곰이 찾아온 날 (사카이 고마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담은 그림책.
 산타 할아버지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에게 별밤곰이 찾아온다.
 아이는 산타가 누구인지 모르는 별밤곰에게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려 있는 장식들을 선물하고, 비행기 장난감을 선물하는 순간 별밤곰과 함께 하늘 너머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웅진주니어. 32쪽. 7500원.
 ▲색깔 속에 숨은 세상 이야기(박영란 외 글·송효정 그림)=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색은 바로 빨간색. 이 색이 크리스마스를상징하게 된 데에는 산타클로스의 붉은 외투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산타클로스의 모습은 사실 코카콜라 회사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겨울에 콜라 판매량이 뚝 떨어지자 회사가 추운 겨울에 코카콜라를 마시는 산타클로스 모습을 광고에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과 문화, 역사 속에 스며 있는 색깔의 상징들을 찾아내 주제별로 엮었다. 법관의 옷이 검은 이유, 하얀색 웨딩드레스의 역사, 운동회를 할 때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는 이유 등 색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아이세움. 148쪽. 8000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글·헬린 옥슨버리 그림. 김석희 옮김)= 어린이 문학의 고전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영국의 유명 그림 작가 헬린 옥슨버리의 삽화를 입혔다.
 민소매 원피스에 흰 운동화를 신은 경쾌한 차림의 앨리스를 비롯해 물감과 색연필로 그린 부드러운 색감의 그림들이 책 곳곳에 실려 이야기 맛을 살린다.
 웅진주니어. 207쪽. 1만2000원.
 
 ▲큰 곰 (프랑수아 플라스 글·그림. 함정임 외 옮김)= 문명 발생 이전의 원시 세계를 배경으로 `걸어다니는 종족’의 아이 카올의 성장 과정을 그린 그림책. 카올의 태몽 속 주인공인 큰 곰이 화자로 등장해 카올의 생명을 지켜주고 아이가 어른으로 커 나가는 과정을 들려준다.
 솔. 64쪽. 1만2000원.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철학 초콜릿 (미셀 피크말 글·필립 라코트리에르 그림. 박창호 옮김)= 동·서양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철학 우화 63편과 각 이야기마다 생각해봐야 할 거리를 담았다. 출출할 때 먹는 초콜릿 한 조각처럼 틈 날 때 가볍게한 편 씩 읽어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미래아이. 140쪽.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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