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코끝에 걸리면 으레 새 파자마가 필요해져. 무릇 파자마라면 웬만한 잠버릇을 이겨낼 낙낙한 품, 들러붙지 않으면서 땀은 걷어가는 쾌적한 착용감 이 두 가지가 다지. 그런데 이걸 만족하는 제품이 많지 않아. 얼마 전 찾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이미 온라인 품절이더군. 당황한 나는 내가 원하는 파자마를 찾아 유목민처럼 온라인을 떠돌았지. 디자인, 소재, 컬러, 사이즈를 일일이 체크하다보니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눈이 푹푹 쑤셔오더라.
좋은 파자마 한 벌, 열 이불 안 부럽다는 주의로 살아온 파자마예찬론자로서, 나의 쇼핑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었지. 낙낙하고 쾌적한 파자마 한 벌 고르는데 몇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매장에 가면 될 걸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싶어 양말을 꿰 신다가 맥없이 손을 놓아버렸어. 이 시국에 어딜 휘적휘적 나간단 말이니.
파자마가 아니라 코트였다면 오히려 간단했을까. 소재와 가격대 중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하면 되니까. 하지만 겨울이 코끝에 걸린 2020년, 새 코트는 무용(無用)해도 너무 무용하구나. 차르르 떨쳐입고 나가봤자 9시가 되면 얇은 마스크를 방패처럼 두르고 집으로 오는 전철을 타겠지.
도시의 겨울은 한마디로 말하면 리드미컬했지. 왁자한 수다와 맛있는 냄새와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거리마다 사람들은 발끝을 세워 걸었으니까.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목이 터져라 카운트다운을 하곤 했어. 새로운 세상을 맞는 일이 벅차지 않았던 순간은 살면서 한 번도 없었어. 아이였을 때나 어른이 돼서나, 울고 있을 때나 웃고 있을 때나, 겨울과 함께 찾아오는 새로운 1년을 만날 땐 심장이 쿵쾅쿵쾅 리드미컬하게 박동했어.
올해는 일곱 살에게나 일흔 살에게나 생애 처음의 쩨쩨한 겨울이 될 거야. 나에게도 그럴 테지. 온라인 품절된 파자마가 오프라인에 있을 리 없잖아. 나는 아마 보풀이 보숭보숭하고 무릎이 활처럼 벌어진 낡은 파자마를 겨우내 입겠지. 우리가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 적막한 거리를 걸을 때, 낡은 파자마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보신각 종소리를 들을 때,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저마다의 치열한 1년을 곱씹을 때, 제발 소담한 눈이라도 와주라. 안그럼 진짜 쩨쩨해, 진짜 너무하는 거야, 올겨울(울컥).
안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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