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재판이 끝났다고 해서 일이 다 마무리 된 건 아니다. 사법부에서 정치권으로 논란이 옮겨졌을 뿐이다. 박 전 대통령 형이 최종 확정되면서 정치권에선 사면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7년형이 확정돼 두 전직 대통령 모두 사면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당리당략에 따라 셈법이 엇갈리고 있다. 당초 사면론은 여권에서 먼저 불씨를 댕겼다. 주인공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였다. 이 대표는 새해 첫날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라고 밝혀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은 후끈 달아올랐다. 이에 대해 당 안팎에서 비난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근 들어서는 지지율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자 이 대표는 “당사자 반성이 중요하다”고 했다가 최근엔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며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내 반발과 여론이 악화하자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아무리 재보선이 눈앞이라고 해도 여론에 휩쓸려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유력 대선주자로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에 반해 야권에선 조건 없는 사면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소속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16일 한 지상파 토론에서 “조건 붙이지 말고 (18일) 월요일에 있을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남은 임기 내에 전직 대통령 사면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며 “사면권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준 고유 권한이고, 국민 통합이나 미래 같은 더 큰 대의를 위해 사면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사면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의당은 사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종철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되면 최순실, 원세훈, 이재용은 어떻게 되나”라며 “한 팀이 되어서 저지른 문제에 대통령만 사면해준다면 그것 자체가 불의”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어느 쪽도 100%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여권이 주장하는 사죄를 전제로 한 사면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없으며, 야권이 요구하고 있는 국민동의 없는 일방적인 사면은 국민 법 감정과 형평성에 어긋난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이 모두 흠결이 있는 주장을 들고 나와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오늘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언급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와 고용한파 등 당장 해결해야 할 민생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지금 당장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여론이 좋지 않다. 사면은 말 그대로 대통령 고유권한이다. 하고 안 하고는 대통령 마음이다. 정치권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갈등을 확산하지 말고 때가 무르익을 때가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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