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찾습니다’
  • 모용복선임기자
‘피해자를 찾습니다’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0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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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의원 인턴 성폭행 의혹
목격담은 있는데 피해자는 없어
피해자 지목 당사자 피해 부인
목격담은 피해 입증 수단일 뿐
일부 주장 근거로 가해자 치부
또 다른 피해자 만들 우려 있어

‘목격자를 찾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종종 볼 수 있다.

교통사고 뺑소니 피해자가 목격자를 찾는 내용이다.

간혹 교통사고 당사자들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경찰이 목격자를 수소문하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으면 피해자는 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

그러니 사례금까지 내걸고 목격자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목격자가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우선 경찰서에 들락날락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다.

또 괜히 송사에 말려들었다가 곤란을 겪게 되면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목격자는 있는데 피해자가 없는 이상한 일도 있다.

무소속 김병욱 국회의원 인턴비서 성폭행 의혹이 그런 경우다.

지난 6일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는 ‘김병욱 여비서 강간’이란 제목의 40초 분량 영상을 내보냈다. 이 영상에는 ‘강간 장면을 목격했다’는 삽화와 호텔에 함께 묵었던 여비서가 사과를 요구하는 문자 메시지 캡처 화면이 나온다.

사건의 발단은 2년 여 전 김 의원이 바른미래당 이학재 의원 보좌관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세연 주장에 따르면, 김 의원은 2018년 10월 15일 김천에서 한국도로공사 국정감사를 마친 후 안동시로 이동해 경북도가 마련한 술자리에서 여비서와 인턴 여비서를 알게 됐고, 이후 두 여비서의 숙소인 호텔로 찾아가 인턴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내용이다.

여비서가 술에 취해서 침대에서 자다 깨어나 보니 인턴 비서가 김 의원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더라는 목격담이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저와 관련해 다룬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이런 더럽고 역겨운 자들이 방송이라는 미명하에 대한민국을 오염시키고 있는 현실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이어 “결백을 밝히고 돌아오겠다”며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김 의원의 해명에도 여권과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비난이 고조됐다.

포항여성회 등 32개 단체는 지난 11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기자회견을 열고 김 의원을 강력 성토했다. 이날은 김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한 날이다.

이들은 “김병욱 의원은 최근 제기된 성폭행 의혹에 대해 책임을 지고 탈당이 아닌 사퇴를 통해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권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국민의힘 관계자나 지역구 주민들도 성폭행 의혹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여러 ‘미투’사건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유력 인사들이 처벌을 받거나 국민적 지탄을 받고 정계를 떠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사자간에 은밀하게 벌어진 성폭행 추문(醜聞)은 가해자가 발설하지 않는 이상 세상에 알려지기 어렵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 미투를 해야 마침내 세상에 드러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속담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전은 시작됐다.

시민단체들이 법원 앞에서 김 의원을 성토하던 날 성폭행 피해 당사자로 지목된 여성이 “일체의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고 밝히고 나서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현재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실에서 일하는 이 여성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당사자 의사는 물론 사실관계 조차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저의 입장을 생각해 주시고 더 이상의 억측은 자제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추문은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다고 고발해야 실질적으로 피해 사건이 된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제3자가 확대 재생산을 했다면 그것은 피해자의 의사가 분명히 반영된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피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피해를 당한 사실이 없다고 하면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폭행 사건 자체가 성립할 수도 없다.

미성년자도 아니고 성인이 피해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주장만을 근거로 가해자로 몰아가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게 된다.

목격담은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다. 목격자가 있다고 해서 피해자를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길거리에 ‘피해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이라도 걸어야 하나?

참으로 이상하고 해괴한 사건이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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