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氣味)상궁’ 논란
  • 모용복선임기자
‘기미(氣味)상궁’ 논란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0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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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부터 AZ 코로나 백신 접종
접종1호 두고 정치권 논란 가열
野 “국민이 기미상궁이냐” 공세
대통령 가장 먼저 접종해야 주장
與 “저급한 정치공세” 강력 반발
백신접종 논란 소모적 논쟁 불과
국민에게 불안만 조장 결과 초래
이틀 후 시작되는 코로나19 백신 국내 접종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다. 급기야 최근에는 ‘기미(氣味)상궁’까지 소환돼 논란에 가세했다. 기미상궁이란 왕이 식사를 하기 전 독(毒)의 유무를 검사하기 위해 먼저 음식을 맛보는 상궁을 말한다.

기미를 보는 일은 아무 상궁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상궁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어른 상궁인 제조상궁(提調尙宮·큰방상궁)이 맡아 했다. 제조상공은 내전의 어명을 받들며 대소치산(大小治産)을 관장했다. 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므로 권세를 쥔 상궁도 많았으며, 부하 나인들에게는 두렵고 어려운 존재였다.

기미상궁 논란의 발단은 유승민 전 의원과 정청래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을 펼친 데서 비롯됐다. 유 전 의원은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백신 1호 접종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지난 19일 페이스북에서 “그 말을 지킬 때가 왔다”며 “아스트라제네카 1번 접종을 대통령부터 하시라. 그래야만 국민이 믿고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정청래 의원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정 의원은 다음날 페이스북에서 유 전 의원을 향해 “당신이 솔선수범해 먼저 맞지 그러시냐”며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이는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이자 모독”이라며 “국가원수는 건강과 일정이 기밀이고 보안사항이다. 초딩 얼라보다 못한 헛소리로 칭얼대지 마라”며 원색적인 비판을 퍼부었다.

두 사람에게서 시작된 백신접종 논란은 마침내 여야 지도부로 확전됐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2일 국회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문 대통령을 겨냥해 “아스트라제네카는 면역률도 문제지만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정부가 사용을 허락했다면 대통령을 비롯해 책임 있는 당국자가 먼저 접종해 불안을 해소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여당은 대통령을 백신문제에 끌어들이려는 저급한 정치공세라며 반박했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만일 대통령께서 먼저 백신을 맞는다면 특혜라고 할 것 아니겠나. 만약 야당이 백신 특혜시비를 하지 않겠다는 확답만 준다면 나라도 먼저 맞겠다”고 맞받아쳤다.

정청래 의원은 또다시 유승민 전 의원을 겨냥했다. 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을 존경하고 걱정해서가 아니라 국민불안을 증폭시키는 무책임한 술수”라며 “그렇게 국민건강이 걱정된다면 괜히 대통령에게 시비 걸지 말고 나와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맞자”고 유 전 의원에게 제안했다.

이러한 정 의원의 제안에 대해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다 오히려 부담만 준 것이라고 비꼬았다. 하 의원은 “정 의원이 자기 말이 궁색해지니 이제 유 전 의원에게 자기와 함께 맞자고 한다”면서 “아스트라제네카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리스크가 있다는 건데 아직 50대인 정 의원은 그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모범을 보이라는 의견에 대해 ‘대통령은 실험대상이 아니다’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은 국민에게 조선시대 기미상궁처럼 백신을 먼저 접종해 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권의 논란은 번지수가 벗어난 소모적 논쟁에 불과하다. 오늘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에서 첫 출하돼 26일 접종이 시작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자는 전국의 요양병원·요양시설, 정신요양·재활시설 만 65세 미만 입소자와 종사자 28만 여명이며, 접종에 동의한 이들이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뚱딴지처럼 백신 부작용 논란을 키우는 건 접종을 앞둔 국민들에게 불안감만 안겨줄 뿐만 아니라 향후 백신 수용성을 저하시킬 우려마저 있다.

더군다나 질병당국이 65세 미만에 대해 우선 접종키로 한 마당에 굳이 65세가 넘은 문 대통령을 끌여들여 접종을 강요할 이유도 없다. 만약 일부의 우려대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정녕 65세 이상 고령층에게 안전하지 않다고 믿는다면 더욱 더 대통령에게 접종을 강권해선 안 될 일이다. 만약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해 논란을 부추긴다면 ‘참 나쁜’ 사람들이라는 지적을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대통령의 기미상궁이 아니듯 대통령도 국민의 기미상궁이 될 순 없다. 더군다나 대통령과 국민은 하는 일이 엄연히 다르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로서 국민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몰아붙여선 안 된다. 백신에 대한 국민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대통령이 아니어도 된다. 국무총리든 질병청장이든 방역 책임자가 나서면 된다.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도 문제지만 이치에 맞지 않은 무분별한 비판은 국민에게 피로감만 안겨줄 뿐이다. 참으로 기미상궁이 울고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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