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벼슬과 달걀 노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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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벼슬과 달걀 노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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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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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이는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중 가장 큰 덕목(德目) 중의 하나다. 즉,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무한책임의 표현이다. 원래 노블리스는 ‘닭의 벼슬’, 오블리제는 ‘달걀의 노른자’를 뜻하는 두 단어의 합성어. 즉, 닭의 사명(使命)은 자기의 벼슬을 자랑하지 않고 알을 낳는 데 있다. 곧 사회 지도층이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명예(노블리스)만큼 합당한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의 총칭(總稱)이다.

유래는 로댕의 10년에 걸친 작품 ‘깔레의 시민’으로 회자(膾炙)된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때 ‘깔레’시(市)는 끝까지 영국에 저항하다 1347년 끝내 항복하게 된다. 당시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6명의 깔레 시민이 처형당할 것’을 요구했다. 이때 깔레에서 제일 부자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 시장(市長) 장데르, 부자 상인(商人) 피에르 드 위쌍과 그의 아들, 이에 감격한 시민 3명이 위대한 희생정신을 따르겠다며 결국 순교자원자(殉敎自願者)가 7명이나 되었다. 다음 날 아침 6명이 처형장에 모였을 때 부자 외스타슈드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으면 순교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에 크게 감동하여 영국 왕은 처형을 취소했다. 그 후 오늘날의 ‘깔레’는 노블레스(귀족) 오블리제(의무)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초기 로마 시대 당시의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심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솔선수범하는 공공심(公共心)이 곧 공공정신(公共情神)의 중심축이 된 셈이다. 근대와 현대에서도 이러한 도덕심은 전(全) 세계 계층 간의 갈등과 반목(反目), 불신과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곱씹을수록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오늘날 온갖 수단과 작태(作態)로 기득권 쟁탈에 혈안이 된 정치판과 사회 지도층들이 다시금 되새겨 볼 일이다. 특히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총체적 국난(國難)을 맞아 우리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과 지도층이 솔선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一紅 權不十年)”.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선현(先賢)들의 명언(名言)이 특히 실감 나는 때다.

실제로 세계대전(世界大戰) 때, 영국의 고위층 자녀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戰死)했다. 포클랜드전쟁 때,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가 전투 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전쟁 때,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했다. 그들의 명예(노블리스)와 의무(오블리제) 정신이 지금도 큰 교훈이 되는 이유다.

최근 세계 최고 부자들의 기부 클럽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재산 절반의 통 큰 기부를 선언한 카카오 김범수 의장(약 5조 원)과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약 5천 5백억 원). 두 자수성가형 창업자들의 기부 선언으로 한국 IT업계에 ‘따뜻한 자본주의, 자선(박애) 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가 큰 화제다.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초 13조 원에서 현재 44조 원으로 3배 이상 성장하였다. 국내 1위 배달앱 배달의민족 우아한형제들 역시 글로벌 딜리버리히어로(DH)로부터 5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는 국내 스타트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으로 기록된다.


이들의 통 큰 기부배경에는 기업의 성장이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루어져, 가업의 사회적 책임이 곧 경영철학이 된 셈이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치열한 글로벌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창업가 정신의 실천이 곧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환원과 통 큰 기부의 실천경영으로 이어진 값진 교훈이라,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오늘날 진정한 리더쉽과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과 도덕적 의식에 대한 기준을 우리에게 명쾌하게 제시해준 한국형 쾌거(快擧)이기 때문이다. 10년여 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부부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전(全) 재산을 기부했다. 당시 등장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부(寄附) 문화의 상징이 이제 한국에서도 이루어진 셈이다.

오늘도 시끄러운 표몰이식(式)의 갑론을박과 이전투구식(泥田鬪狗式) 지겨운 정쟁(政爭)이 계속되는 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특권과 지위와 권한을 악용한 일부 지도층의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부(富)의 축적과 재산형성 과정이 종종 시시비비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때 일수록 민초(民草)의 상실감과 배신감이 더욱 커지는 줄도 모르고(?). 진정한 의인(義人)은 ‘자신을 낮추어서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고, 물러섬을 알아 전진을 위한 후퇴를 할 수 있으며, 화합하여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고, 원만하여 충돌하지 않는다.’던 선현(先賢)들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제 구태의연(舊態依然)한 보여주기식의 기부 시대는 사라져야 한다. ‘카카오와 배달의민족’의 통 큰 기부에 필자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너무나 답답하고 목마른 갈증이 계속되고 있는 하 수상한 코로나19 시절. 큰 사발에 시원한 막걸리를 한 번에 들이키는 듯한 기분 좋은 소식이다. 더 나은 사회환경을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밑거름인 조직이 곧 기업의 성장이 아닐까? 봄이면 씨앗 뿌려 가을이면 풍년을 기다리는 농심(農心)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가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계속 이어져 기업의 사회공헌을 위한 기부문화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영국 계명대 벤처창업학과 교수·경영학박사·Saxopho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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