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주소이전 운동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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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주소이전 운동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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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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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란 것은 보통은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 동안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어떤 가시적인 시점을 지날 때가 되어서야 모두를 화들짝 놀라게 하곤 한다. 포항시의 인구 50만 붕괴가 가시화되면서 주소이전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50만에서 불과 1~2천명을 넘기고 있는 상황이니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인구 10만이 깨지는 바람에 공직자들이 상복을 입고 출근한 도시도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50만 붕괴는 그에 비할 수 없는 더 큰 위기상황이다.

솔직히, 시민 입장에서야 49만인들 뭐가 그리 대수인가 라는 반응도 있다. 사실 그렇다. 어차피 인구 몇 천 명에 따라 도시의 여건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구 20만만 되어도 좋은 계획과 혁신적인 생산기반만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구 50만을 경계로 많은 것이 차이가 나게 된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국토계획과 관련된 법이 다 그러하다. 우선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는 명칭부터가 다르다. 관련법에서는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를 콕 집어서 ‘대도시’라 칭한다. 지방자치법 17조에서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를 ‘대도시’라 하여, 특별시, 광역시 및 특별자치시와 같은 수준의 행정구역임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도시계획 관련해서도 50만을 경계로 하여 많은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용도지역 변경이 그러하다. 대도시라면 용도지역 변경을 시장이 직접 결정할 수 있지만, 그 이하 도시에서는 도지사가 그 권한을 가져가게 된다. 지방자치라는 것이 결국 중앙의 권한이 지방 도시로 옮겨지는 것이라 할 때, 결국 그 종착역은 각 지역의 대도시들일 수밖에 없다. 대도시에 이르지 못한 도시들은 장래에도 지방자치권을 온전히 확보하기는 어려운 처지가 되는 것이다.

행정구역 구분도 차이가 크다. 북구니, 남구니 하는 행정구의 구분도 대도시에만 있는 것이다. 50만 미만의 도시는 통째로 하나의 시일뿐, 구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구청 두 개가 없는 상태에서 시청이 그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주민들로서도 체감되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상황에서 두 가지 방안이 언급되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주소이전 운동이다. 주소 이전 시민에게 30만원 상당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절박한 여건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렇게 수천 명을 늘린다 한들 언제 빠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숫자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주변 도시들과 행정구역을 통합하는 것이다. 당장 경주시와의 통합이 유력하다. 하지만 별도로 존재하던 두 도시를 서투르게 묶는 것이 장차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모든 것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들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효과를 지니기 위해서는 방향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주소이전을 위해서는 인구성장 잠재력 있는 지역에 대한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 포항의 경우 양덕과 오천이 그러하다. 평균 연령이 가장 젊은 1, 2위 지역이다. 당연하게도, 외부인이 이주하는 경우 이 두 지역에 자리 잡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래서 이 지역에 좋은 생활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포항시의 인구 흡수능력에 지대한 영향 끼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양덕은 제대로 된 중심상권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중심부의 대형마트 건물은 한때 8만 인구를 배후로 거느렸지만 제대로 된 운영주체를 만나지 못해 아직도 폐업과 개업을 오가고 있다.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천지역도 그러하다. 해결되지 못한 오랜 환경문제로 인해 쇠락으로 돌입하는 양상이다. 인구 유입의 접속로라 할 수 있는 두 지역의 입구가 꽉 막혀있는 처지에 무슨 인구 증가를 기대하겠으며, 주소이전을 요청하겠는가. 시가지는 떡하니 개발해 놓고도 필요한 시설은 주지 않으려는 가학적(?)인 정책으로 인구감소는 피하기 어렵다.

둘째로, 주변 도시와의 통합에 있어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 이에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의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 서로 독립된 도시들이지만 그들을 통과하는 강을 중심으로 하나의 협력권을 이루며 성장하곤 한다. 도시 중심부가 고층빌딩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유려한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하여 도시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포항과 경주는 태생도 성장과정도 완전히 다른 도시들이다. 하지만 형산강이라는 거대한 협력선이 가운데 놓여 있다. 전통과 현대를 상징하는 두 도시의 시가지를 형산강이라는 자연권역이 연결하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형산강이라는 자연자원의 보존적 활용에 중점을 두면서 협력권을 형성해간다면 상생발전의 길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주소지가 없는 주변 지인들을 만나면 이전해줄 것을 부지런히 설득하고 있다. 도시계획을 조금 아는 처지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당연한 시민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민들의 인정에 호소하는 방법이 궁극적인 대책일 수는 없다. 주소 이전은 시민들에게 맡기고, 시정 측에서는 그 뒤의 방향성과 전략을 넓고 크게 준비해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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