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만디 보다 험난한 삶 살아온 김유원 할머니
  • 경북도민일보
저 산만디 보다 험난한 삶 살아온 김유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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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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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 김유원, 채록자 : 윤혜주
택호는 과천댁, 18~20살 때
중매로 칠남매 중 둘째와 결혼
맏이 노릇 하며 시동생들 챙겨
오남매들의 공부는 항상 뒷전
그래도 잘자라준 아이들 고마워
김유원 할머니.
할머니의 손
윤혜주 작가와 함께
할머니의 찬송가
김유원 할머니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는교?”

겨울 다리목 기계면 현내리에서 94세 육척단신 김유원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김유원이란 이름으로 산 세월

“택호가 과천댁. 친정은 가안2동. 내가 지금 나가(나이가) 얼만교(얼마입니까). 그때는 열여덟이나 스물이면 시집 못간데 캤어(했어). 내가 맏이로 컸는데 엄마 아버지는 뒷전이고, 조모祖母가 나서서 서둘러 보냈어. 형제 여럿 있는 집에 가면 좋다꼬. 둘째치(둘째 아들)에 가면 사랑받는다고 해서 갔지.



아낙의 삶을 시작하다

“할배(할아버지)하고는 중매로 왔니더(왔어요). 좋아하고 말고도 없지. 월성이가(월성 이씨) 칠남매 둘째 치로 와가(와서) 없기는 없고,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홍겁(엄청 놀라 겁을 먹음)했니더. 삼형제 중 우리 시아버지가 막내. 이 집이가(이 집안이) 어렵게 살아 신랑이 늦게 결혼했어. 신랑은 28살, 7형제 중 둘째라. 단칸짜리 남의 집에 살 때였어, 한번은 주인이 어디 가면서 집세 조로(명목으로) 방깐(방앗간)을 찍어 달라면서 계란을 한 그릇 주는데 흉년이 들어 배가 얼마나 고픈지. 방깐 찍으면서 눈물하고 계란을 울면서 묵었니더(먹었습니다). 그래 살면서 그 집에서 큰아들을 낳았지. ”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들과 함께하다

“자식은 오남매. 아들 둘에 딸 셋이. 아침 겸 점심 겸 먹고 경로당에 가서 놀다가 와 저녁 먹제. 하루 두 끼 먹을 때도 있고, 세끼 먹을 때도 있어. 아침에는 우유 하나씩 먹고 그래. 저기, 전기세에 있는 김유원이 내 이름이고 나이는 94살 많니더. 시숙 죽고 동서 가버리니 내가 맏이 노력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시동생, 시누부(시누이) 많아서 아이들 공부시키느라 애 먹었어. 자식들 공부는 뒷전이었지 뭐. 시집 올 때 어른들이 있어 모셨어. 아이들 공부 시킬 때, 몽당연필만 자꾸 쥐어줬더니 큰아들이 부끄럽다고 학교 안가고 도망 가는기라. 쫓아갔지. 하도 내가 쫓아가니까 아들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면서 울면서 돌아서서 왔어. 그러고는 다시 안 그랬어.

생고생해서 시동생, 시누부(시누이) 시집 장가 보내놨더니 못 살고 다 달라가뿌네(달아나 버렸네). 도망가니 또 장가보냈지. 재혼을 두 번이나 시켰어. 지금은 마카(모두) 다 가 버리고 동서 하나 있는데 갈라꼬(죽을려고) 요양원에 있어. 내가 제일 오래 살고 있는데 어떤 때는 하나님 날 데리고 가소 하니더.”



어머니의 이름으로 세월을 달리다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큰아들이 3살 때 이 집을 할배하고 지었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산 아래 사는 진사댁이 큰집이라 의지도 됐지. 가진 것 없었지만 한 집 건너 이웃들이 대소가들이라서 외롭지는 않아 좋았니더. 아이들도 여그서(여기서) 다 키우고 시집 장가 보냈니더. 할배도 이집에서 살다가 돌아가신지 9년째 됐니더.

둘째 아들은 양산 살고, 큰아들은 부산, 맏딸은 강동살고, 둘째 딸은 포항, 막내딸은 경주살고 한 번씩 올 때는 집이 들썩거리지(시끌벅적 하지).

우리 큰아들은 범띤데 공부를 잘해서. 해군사관학교 나와 별을 한 갠지, 두갠지를 따 가지고 근무하다 퇴직해 부산에서 가만히 앉아 묵고 사니더. 둘째 아들이 자주 찾아와. 막내딸이 경주 사는데 제일 자주 와. 아침이면 죽었는지 전화가 와. 아침 해 먹었다 하면 웃는다. 가야되는데 못 가고 이래(이렇게) 있어.”



믿음으로 세월을 살아오다.

“기계제일 교회 다니니더. 교회는 여기 와서 다녔니더. 친정 골짜기에 교회가 어디 있는교. 어느 핸가 늑막염이 걸려 죽을려고 했니더. 내가 저 자식들 두고 죽으면 우짜고 했어. 자발로(내 발로) 교회를 갔어. 그때부터 댕겼니더(다녔습니다). 교회 가니 마음이 많이 편했어. 요새는 나이가 많아서 새벽 기도, 저녁 기도는 못가. 아이들이 넘어질까 봐 못 가게 해. 주일에는 꼭 빠지지 않고 가니더. 하나님 나를 이렇게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하고 지금껏 살고 있지.”



효도로 돌려받다

“ 할마시(할머니) 살아 있다고 노인 연금 나오잖아. 그거 내 쓰고 저그(자식들) 조금씩 주니더. 많이 못해. 십일조 조끔 하고 그래. 잡숫고 싶은 것 먹고 친구들 대접 시키라고 아들이(아이들이)자꾸 돈을 준다. 경로당 가서도 자식 자랑은 안 해. 아이들은 클 때부터 말을 잘 들었어. 없어서 그렇지 착했지.

전기세, 전화세는 큰아들이 다 내줘. 엄마는 밥 해먹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아들이 다 내 주니더. 둘째 아들은 오면 저그 엄마 육회 좋아한다고 고기 사와, 부엌에 들어가 육회 만들어 주고 가니더. 갈 때는 불효자라고 울면서 간다. 나이 구십 노인이면 귀신 아인교(아닙니까). 저기 청심원 또 사다 놨다. 아들이 자꾸 약 지어다 먹이고, 병원 데리고 다니고 하니 아이구 하나님 이제는 불러가소 하니더.”



할배와 산 세월을 추억하다

“할아버지는 한 달인지 두 달인지 고생하다가 갔어. 갈 때는 쉽게 갔어. 한 사흘 못 먹더니 갔어. 할아버지하고 둘이 살다 먼저 가니 섭섭했어. 정이 좋았길래 오남매 낳았지. 할아버지는 교회 두어 달 다녔어. 천당 가려면 교회 갑시다. 하니 몇 번 갔어. 담배는 하다가 안 맞는지 끊었어. 술은 옛날에 아주 못 배워서 못했어. 나는 그런 걸로 고생은 안했어. 할아버지와 싸움도 안했어. 내가 윷놀이 하다 저물어 집에 들어가면 ‘뭐가 저 따위가 있어,’하고 고함은 쳤지. 그러면 내가‘아이구 죄송합니다.’하고 얼른 밥 해 드리면 그만 풀어 졌어 허허.”



노년이 결코 외롭지는 않다

“요(저) 산 밑이 진사댁인데 월성 이가가(이씨) 마이(많이) 살잖아. 전부 질부들 아이가. 나이가 있어서 그렇제(그렇지) 젊을 때는 귀염을 많이 받았어. 그 사람들 지금은 다 가버리고(죽고) 없다. 여기 살면 하나도 안 외로워. 저그는(자식들은) 불효한다고 하는데 나는 안가. 저그 안테 가면 갇혀 살지.

텔레비가 노리개(장난감) 아이가. 성경책도 읽고, 저녁에는 찬송가도 부르고 자니더(잡니다). 텔레비 보다가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텔레비 보고 하니 안 심심해. 외롭지도 안 혀. 세상이 월매나(얼마나) 좋노. ”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린다

“ 아침 겸 점심 먹고 수레 끌고 경로당에 가니더. 이웃에서 올 사람은 없어. 다 비었어. 수레 끌고 경로당에도 가고 못 가는 데가 없어. 아들이 사줬어. 할배사(할아버지들은) 오는교. 경로당에는 할매들이 많이 오니더. 90넘은 사람이 2.3명 정도 있어.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니더. 내 죽으면 묵힐 땅 해 놨니더. 상석까지 다 해 놨다. 죽었다하면 포크레인으로 파헤치면 되게 해놨어. 아들도 수의해놓고 나도 내 손으로 해놨어. 믿음으로 살았는데 하나님 믿고 살다가 가면 되지 뭐.”


자료제공=경북기록연구회·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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