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류(越流)
  • 경북도민일보
월류(越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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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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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햇살아래 산들바람 지나가자 벚꽃잎 우수수 꽃비 되어 내린다. 울긋불긋 꽃 덤불 산등성이 아래로 아지랑이가 가녀린 여인의 춤사위처럼 피어오르는 만화방창 푸릇한 들녘을 바라보며 온몸에 봄볕을 흠뻑 적신 채 해마다 가꾸던 작은 텃밭에 상치랑 고추 몇 포기를 심었다. 옮겨 심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휘둘려 몸살이 났는지 모종 이파리들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물을 듬뿍 주면 다시 생기를 되찾겠지.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하여 끌어다 놓고 꼭지를 틀자 콸콸 이랑 따라 물이 흘렀다. 흐르던 물줄기가 움푹 패인 구덩이에서 멈춘다. 그 구덩이를 기어이 다 채우고 나서야 넘쳐흐른 물이 목마른 밭을 적셔나갔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에고이즘에 사로잡힌 메마른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이야 불행하던 말든 “나만 아니면 괜찮아”라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이라지만 아직도 사회곳곳에는 따뜻한 온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저 자신도 궁핍하면서 저보다 더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 저도 아프면서 저보다 더 아픈 사람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타인의 상처에 자신의 아픔처럼 눈물을 흘리며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들, 어떻게 그리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 또한 자기만족을 실현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거나 의무감일 것이라고. 그런데 텃밭 고랑사이를 흐르던 작은 물줄기가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가슴속에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이라 했다. 가득한 그 사랑이 흘러넘쳐 나눔과 봉사, 자기희생으로 발현되어 삭막한 세상을 적시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내게 물었다. 지금까지 사랑을 갈구하고 진리를 추구했으나 이 가슴에서는 무엇이 세상으로 넘쳐흘렀나. 아직도 욕망의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있는 무익한 생이 아니던가. 나누고 도우며 베풀어주는 삶을 산다는 건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나 지식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부자가 되어야 가능한 일도 아니며, 시켜서 억지로 되는 일도 아니었다. 먼저 나부터 메마른 가슴을 적시고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흐르는 물이 구덩이를 채우고 나서 흘러넘치듯 가슴에 사랑과 긍휼한 마음을 채우면 결국 밖으로 흘러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사랑은 자기희생을 내재하고 있다. 그런 사랑이 내면에 충만하게 되면 자신부터 아름다워지고 인격은 원숙해지며 긍정적인 아우라가 그 주변을 감싼다.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밝고 따뜻한 기운이 흘러가 가정은 더욱 화목해지고 이웃이나 직장에서는 언제 봐도 기분 좋은 사람이 된다. 막연하게 밀려들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인생에 대한 허무도 사라지고 이기에서 이타로 자연스레 삶의 중심점이 옮겨진다. 타인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삶에서 진정한 기쁨과 존재가치를 깨닫게 된다.

모든 괴로움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오고, 모든 행복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으로 온다고 했다. 사람은 스스로 행복할 수 없고 혼자서는 그 어떤 의미도 발생되지 않는다. 영광도, 명예도, 긍지와 보람도 모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온다. 그러므로 사람은 타인과 공동체를 이뤄 서로 사랑하며 나누고 도우며 살아갈 때 온전한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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