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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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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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의 처리를 놓고 서울시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전 시장이 추진하던 광장의 리모델링을 지속하느냐, 중지시키느냐하는 것이다. 상당한 비용이 투입된 처지라 중지시킬 수는 없다는 의견과 불필요한 사업을 굳이 진행해야 하는가하는 반발이 부딪히고 있다. 애초에 이 시점에 대규모 공사가 결정되었는가 하는 부분도 설왕설래의 대상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은 원래 광장이란 곳이 다분히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광화문 광장처럼 권력 핵심의 전면부에 놓인 대규모 광장이 가지는 정치적 영향은 엄청나다. 그 배후에는 언제나 ‘광장의 정치학’이 작용한다.

광장이란 장소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품고 탄생했다.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아고라가 그것이다. 신전으로 둘러싸인 이 광장들은 그리스의 성년 남성들이라면 모두 나와 정치적인 견해를 펼치는 장소였다. 백이십 미터에 불과한 광장의 크기는 목청을 높이면 모두에게 말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를 위해 절묘하게 디자인된 스케일이었다. 광장 정치의 전통은 로마의 ‘포럼’으로 이어진다.

상점이나 관공서 등으로 둘러싸인 포럼은 그리스 때만큼은 아닐지라도 역시 정치적인 논쟁과 집회가 활발한 장소였다. 포럼이라는 표현이 지금은 참여형 토론을 의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세 이후 한동안 광장은 시장이나 축제를 위한 일상적 장소였고, 정치 기능은 탈색되어 갔다. 하지만 시민 혁명의 시대인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광장의 정치학은 다시금 고개를 든다. 루이16세로 대표되는 절대왕정은 사치스러운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파리 한 가운데 광활한 콩코드 광장을 조성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광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시민혁명 세력이 도시를 장악하는 거점이 되어버린다. 결국 왕과 왕비마저 단두대에 처형하는, 시민권력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 되고 만다. 권력에게 있어 광장은 이처럼 양날의 검이고 반전이 있을 수 있는 무섭고 부담스러운 공간이다.

20세기 이후의 모든 혁명적 움직임들 또한 광장을 매개로 해서 진행되었음은 우리가 보아온 바이다. 사회주의의 몰락도, ‘아랍의 봄’도 광장을 메운 시민들의 모습들로 기억되고 있다. 광장의 움직임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 천안문 광장은 20세기 민주화 운동의 정수로 남을 뻔 했지만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일단은 역사의 뒤안길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홍콩의 경우는 더 어려웠다. 시민의 절반이 나서 당찬 거리의 저항을 보여주었지만, 폭압과 팬데믹이라는 이중의 억압 앞에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파리와 같은 시민 광장이 없었기에 더욱 어려운 싸움이었다. 광장과 시민의 저항은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이다.

광장의 정치학에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초의 대규모 광장이면서 군부의 집권을 상징하던 5.16광장은 민주화 이후에는 대통령 직선을 위한 유세 장소로 쓰였고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바뀌었다. 광장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광장의 흐름은 다시 2008년 광화문 광장으로 이어졌다. 조선조 왕의 ‘주작대로’였던 이곳을 시민광장으로 전환하는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여러 대안 중 선택된 것은 의외로 양쪽이 도로로 분리되어 접근이 쉽지 않은 형태의 ‘중앙광장’이었다. 광장 내부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물놀이 공간까지도 설치되었다. 광장을 조성하되, 정치적 용도로 활용될 가능성은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그런 은밀한 선택이었다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광장의 정치학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청와대 앞마당과 다름없는 이곳에 수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광장을 그리 쉽게 만들 리 없다.

알다시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의 정치가 제거되지 못했다. 결과는 2016년 연말의 이른바 ‘촛불집회’로 나타났다. 대통령이 광장에 의해 탄핵되는 초유의 결과라니, 18세기에나 있었을 법한 광장의 반전이 21세기 서울의 중심부에 다시 출현했던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지금 문제가 되는 광화문 광장의 리모델링을 살펴본다. 탄핵의 기점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규모 집회에는 유리하지 않던 광장을 다시 확장한다는 데, 거기에 어떤 정치적 함의는 없는 것일까. 언뜻 보아서는 광장을 넓히고 보도와 연결하여 시민광장의 성격을 완성하는 사업인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사업의 시기가 너무나 절묘하다. 대선과 정권교체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라니.

광장 리모델링 사업이 시작되면 최소 1년간 광화문 광장은 집회가 어려운 공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공사와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광장의 정치를 막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위나 집회가 멈춘 1년, 이 또한 다분히 정치적인 선택일 수밖에. 다시 말하지만 광장은 양날의 검이요, 반전의 공간이다. 이제 어느 정권에게나 피할 수 없는 부담이 되어버린 광화문 광장, 이 광장을 둘러싼 정치학은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될 것 같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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