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살아남은 슬픔의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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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살아남은 슬픔의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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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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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앤드론즈의 ‘The Unfinished Melody’ 를 들으며
오성은 작가
-비대면 시대의 사랑

본격 비대면 시대가 시작된 이후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학생들도 만날 수 없었다. 각 대학은 녹화 프로그램이나 실시간 온라인 수업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강의가 멈추는 일만은 막고자 했다. 줄곧 대면으로만 강의를 진행해왔던 교강사들은 당혹감을 감춘 채 카메라 앞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학생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나라고 별 다를 바 없었다. 몇 해 전 TV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고정출연한 경력이 있다고 해서 동영상 강의가 반가울 리 없었다. 더군다나 같은 사전녹화 방식이라 해도 TV 프로그램과 강의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TV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철저한 익명의 상대다. 하지만 강의는 다르다. 내가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도 나를 평가하며, 우린 가상의 강의실에 각자 다른 방법으로 입장하여 서로의 마음을 읽어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 즈음 내 관심사는 ‘latency’라는 단어였다. 내가 강의를 만드는 시점과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 시점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며, 이 간극의 묘한 기류를 느끼는 것이 어쩌면 예술의 본질을 바라보기 위한 노력과도 같다는 게 나의 의견이었다. 나는 ‘틈’이나 ‘간극’, ‘갭’, ‘격차’ 같은 단어들을 써가며 우리 사이에 머나먼 강처럼 펼쳐진 웅숭깊은 삶의 진실을 학생들이 발견해주기를 바랐다.



-don‘t break your heart

나의 마음과 당신의 마음이 같을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은 언제나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고심하게 만든다. 미약하나마 그곳에 있는 온기를 같은 마음으로 살피는 일을 오늘의 나는 사랑이라 부르고 싶고, 우린 언제나 하나가 될 수 없는 비극으로 태어난다. 그렇기에 ‘힘내세요 여러분’하며 응원하는 목소리는 카메라 속의 어둠과 데이터의 납작함, 랜선의 굴곡에 의해 변질될지도 모른다. 이 ‘모름’의 상태가 나를 두렵게 만들 때가 있다. 그런 시대 속에 있다고 변명해보지만 사실 모든 시대의 사랑이 그러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내게 응답해왔다. 편지에는 강의를 잘 들었다고, 마음을 읽었다고 덤덤하게 적혀있었다. 학생은 그 글의 말미에 내가 잘 모르는 뮤지션의 이름과 곡을 추천해주었다. 힘든 시기의 당신을 위로했던 곡이라고 고백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에게 답하기 전에 그 곡을 들어보았고, 그날 내 머릿속은 바로 그 뮤지션이 낸 목소리와 무드로 채워졌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비나앤드론즈의 ‘don’t break your heart’ 여린 듯 강직한 보컬에는 가까스로 살아남은 슬픔의 자국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흔적이 제법 아팠다.



-사비나앤드론즈

사바니앤드론즈의 사비나는 그녀의 세례명이라고 한다. 드론즈는 인도 악기 시타르에서 퉁기는 현이 공명하는 소리인 ‘drone’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주체와 객체가 동시에 느끼는 음악의 가능성이 이름 안에 담겨 있다. 그녀가 추구하는 음악적 가치만으로도 내가 고민해오던 세계를 토닥여주는 기분이다. 당신도 힘내라고 내게 말을 건네 온 이의 마음과 당신도 끝까지 힘내라고 내가 건네는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공명이란 그런 것인가.

음악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노래하는 예술이다. 하나가 아니기에 하나가 되고자하는 존재. 이 불완전한 존재는 그래서 음악을 짓고 듣는다. 사비나앤드론즈의 목소리로 나는 오늘 당신이 된다. 부디 이 시대의 당신들이 우리의 슬픔을 나누어가지길. 다시 밤이 찾아온다 해도.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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