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공급, 이제 잉여 주택은 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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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공급, 이제 잉여 주택은 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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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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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컴퓨터를 교체하면서 쓰던 것은 소외계층에게 기증하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증을 연결하는 분은 이를 정중히 사양했다. 낡은 컴퓨터는 소외계층도 받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컴퓨터 자체는 남아도는 시대이구나. 다만 쓸 만한 컴퓨터가 부족할 뿐. 내가 버리는 것이면 남들도 원치 않는 ‘잉여 컴퓨터’일 뿐이란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주택문제가 이렇다. 놀랍게도 이미 ‘잉여 주택’의 시대로 들어선 지 오래이다. 주택공급률은 100%를 훌쩍 넘어 110%를 향해 가고 있다. 지방도시에는 시가지에도 빈집과 공실들이 상당하다.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살만한 집’이 부족한 게 문제인 시대라는 것이다.

주택·부동산 문제가 다가올 대선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로 예정되어 있다. 특히 주택가격 안정 대책은 대선주자마다 하나씩은 다 내놓을 것 같은 태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책 리더들의 생각이 아직도 단순히 공급 논리에만 머무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나름 영향력이 있다는 학자 한 분이 말한 바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었다. “산지를 개발하고 용적률 규제도 철폐해서라도 공급을 늘리면 주택가격은 안정된다”라는 요지였다. 한마디로 모든 땅에 최대한 주택을 짓게 허용하자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전형적인 공급 논리이다. 우리나라의 주택문제는 이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급을 늘리되 ‘살만한 주택’이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잉여주택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중고 컴퓨터 기증하듯, 그저 집을 많이만 공급해주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착각들이 여전히 정책에 들어 있다. 정치권에서 임대주택, 모텔주택, 그린벨트주택, 공공부지 주택 등등의 대안을 내놨고 지금도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계속 시큰둥하기만 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4인이 살아도 충분한 13평 임대아파트’를 홍보하기도 했지만 역시 반응은 싸늘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주택들에서 국민들은 그다지 살만하지 않은, 말하자면 잉여 주택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서 말했듯 산지를 개발하고 용적률을 푸는 것은 대안이 될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산지를 주택지로 개발하는 부분을 보자. 정책가들의 큰 착각 중 하나는 멀리 외곽에 저렴한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면 저소득층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이다. 소득이 낮고 젊은 계층들일수록 오히려 중심지 가까이 살아야 한다. 도시에 몰린 경제적 기회를 잡아가며 생계를 유지하려면 접근성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좁고 허름한 집일지언정,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가지와 가까운 주택이다. 이런 주거학의 기본 원칙도 모르고 외곽의 산지, 녹지를 풀어 주택을 만들어 주겠다니, 결국은 또 다른 잉여 주택으로 달려가는 길일뿐이다.

용적률을 풀자는 발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잉여주택을 만들 위험성이 다분하다. 지금은 이방촌이 되어버린 서울의 대림동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곳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서 용적률, 건폐율 등 대부분의 건축규제를 완화해 재개발한 곳이다. 저소득 주민의 주택공급을 위한, 거의 특혜에 가까운 사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도로도 공원도 없이 주택만 빽빽하게 들어선 답답한 환경에 결국은 서민들도 다 떠나가 버린다. 가끔 범죄 영화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소굴 같은 골목길의 모습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저소득층을 위한다는 개발이 결국 그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게 된 것이니, 이 역시 잉여 주택에 다름 아닌 것이다.

대안을 쏟아내기에 앞서 정책가들이 이 시대의 주택문제를 좀 더 정교한 시각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주택은 그저 양을 늘린다고 가격이 떨어지는 상품과 다르다. 공급의 논리로만 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만 하지도 않은, 말하자면 잉여 주택을, 그것도 대량으로 내놓는다면 문제는 오히려 더 복잡해질 뿐이다. 그러면 대체 잉여 주택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할까. 간단하다. 내가 버리는 컴퓨터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별 쓸모가 없듯,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주택이라면 결국은 잉여주택일 가능성이 높다. 입지여건이나 재산가치, 그 어느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주택을 내놓고는 대중을 위한 정책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정책가의 착각, 자기만족일 뿐이다. 잉여주택들은 지금도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만하고, 살고 싶은, 잉여가 되지 않을 주택을 늘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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