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희롱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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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희롱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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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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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보도는 처음 특정 언론사의 단독보도가 나오면 그 후 보도는 추가 취재보도이거나 대개 인용 형태의 보도다. 이때 제목이나 내용이 진실하지 않을 때 언론사에 ‘기사 열람차단 청구’를 하여 인터넷에 더 이상 기사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기사 열람차단은 추가보도나 인용보도를 봉쇄함에 효과적일 것이다. 또 언론 등의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보도로 재산상 손해 혹은 당사자의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정신적 고통을 준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액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 두면 효과 만점일 것이다.

여기다가 허위나 조작보도를 한 데 대한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언론에 있음을 추정하는 규정을 두고 그 고의나 중과실의 부존재를 언론에게 증명하게 한다면 효과 백배일 것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독단으로 이런 내용으로 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안건조정위에 이어 독단으로 국회 법사위까지 통과시켜 이제 국회 본회의에서 독단으로 통과를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발 개정안이 이대로 법률이 된다면 한국의 언론 환경은 암담해진다. 국민의 알권리도 표현의 자유도 덩달아 암담해진다. 정치권력의 정책에 대한 견제나 불법, 불공정에 대한 감시기능 위축은 물론, 온전한 민주주의보장도 암담해진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언론의 자유에 존립의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법리적으로 개정안은 형식적으로 합법성은 갖출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 적법성 관점에서는 낙제점이다. 언론 보도 등의 제목이나 내용이 진실하지 않을 경우,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기타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로 피해를 입은 자는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비진실성의 정도, 무엇이 사생활의 핵심 영역인지, 인격권의 계속적 침해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공백으로 두고 있어 법률의 명확성원칙에도 반한다. 이는 자의적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주어 언론자유라는 기본권 침해의 위험성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의 인용여부의 기준인 ‘진실’은 보도가 된 후 수사를 통해 1차적으로 밝혀지고 최종적으로 재판을 통해 가려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실여부가 밝혀지기도 전에 기사 열람차단 청구를 통해서 추가적인 보도를 봉쇄함으로써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이는 사전억제금치원칙에도 반한다.

더구나 개정안은 손해를 배상받기를 원하는 이가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민사소송의 대원칙을 버리고 고의 중과실이 언론에게 있음을 추정하는 예외규정을 허용하고 또 손해배상에서도 우리 법체계에도 맞지 않는 손해액의 5배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는 것을 담고 있어 자기검열강화로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 ? 보도에 심대한 독재료를 예고한다.

여권은 언론중재법의 개정 취지로 가짜뉴스를 방지하고 가짜뉴스로부터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으나 현행 법제로도 그런 취지는 달성할 수 있다. 정정보도청구권, 형사상 명예훼손으로 고소,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 등이 그 장치다.

국민은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것이 아니냐 의심한다. 법학자, 법률가, 국내외 언론단체, 야권으로부터 언론말살법이라는 비판에도, 심지어 참여연대, 민변, 여권 원로의 반대에도 귀 막고 강행처리하려는 여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개정안은 위헌적 발상이다.

국민이 정치권력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불법이나 불공정을 감시할 수 있는 건 언론을 통해서이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표현의 자유도 언론을 통해서다. 언론은 의혹 보도를 통해서 진실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의혹보도가 만의 하나 오보라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헌법상의 권리로 언론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실 지금 재판 중에 있는 조국 전 법무장관 부부의 자녀입시부정 등 사건, 월성원자력1호기 경제성평가 조작 사건, 청와대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 윤미향의 정대협기부금 유용 사건, 김학의 법무차관 불법출금 사건 등도 그 시작은 언론의 의혹 보도를 통해서이다.

개정안에 담고 있는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을 오남용한다면 국민의 알권리는 멈춰버리고 언론의 의혹 보도 자리는 정부나 관공서나 단체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만을 보도하는 자리로 대체될지도 모르겠다. 그럴 경우 언론의 권력 견제나 감시 기능은 형해화될 것이다.

활에 쏘여 본 새는 휘어져 흘러가는 물만 보고도 놀란다. 그래서 활 아닌 물마저도 치워버리려 한다. 의혹보도에 놀라 본 권력은 언론에 수면제라도 먹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법률은 법안발의, 토론, 절충, 타협을 통해 폐기나 제정을 하고 공포, 시행, 개정, 폐지의 일생을 거친다. 민주국가에서 법은 국민의 의중을 담는 그릇이다. 복수 정당제하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부족함 없이 국민의 뜻을 반영하여 토론을 거친 절충과 타협의 산물이 법이기 때문이다.

비록 법이 형식적으로 절차를 거쳤다고 해도 대부분 국민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고 특정 집단의 뜻만 담는다면 이는 일부 권력자만을 위한 악법이요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의 도구로 전락한다. 자고로 나라가 잘못되자면 언론부터 통제한다. 권위주의적 혹은 정당성에 취약한 정권일수록 그 통제는 심해진다.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는 진실보도라고 부각시키고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는 허위보도라 하여 매장하는 것을 제도화하여 언론의 정권비판 보도에 철퇴를 가하겠다는 DNA를 갖고 있지 않다면 작금의 여권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당장 철회돼야 한다.

효과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책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밟고서라고 위헌적 입법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여권은 어둠의 폭주를 박차고 포용의 바다로 뛰어 들어야 한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상의 기본권인 언론을 겁박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법희롱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언론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척도이자 근간이라고 했다. 여권은 틈날 때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떠받든다고 했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에서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무시하고 가겠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권력을 잡든 위헌적 입법에 대한 유혹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유혹의 실천을 국민이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 용납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포기요 권력자에게 독재로 가는 길목을 내어주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국민은 깨어 있어야 한다.

플라톤은 말한다.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받을 댓가는 가장 저급한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고.

전정주 경북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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