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상’ 슈테판 츠바이크 탄생 14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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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상’ 슈테판 츠바이크 탄생 14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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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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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偶像). 우리는 살면서 한두 번쯤은 우상을 품는다.

사춘기의 철없던 연예인 우상도 있고, 거짓으로 분칠된 조작된 우상도 있다. 철이 들고서 가슴에 들어와 인생의 나침반이 되는 우상!

돌이켜 보면 나는 10대에 우상을 갖지 못했다. 20대 전반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학 입학 때부터 간절히 원했던 단 하나의 직업, 기자(記者)가 되고 나서 우상이 마음 속에 똬리를 틀게 된 경우다.

아마 1997년이었지 않나 싶다. 자작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이내금 번역의 ‘마젤란’을 우연히 만났다. 이것이 내 운명의 시계를 돌려놓았다.(지금 와서 보니 그랬다) 이 책을 정말 단숨에 읽어냈고, 한 번 더 읽었다. 저명한 오지여행가에게 추천도 했다. 지금도 틈틈이 밑줄친 부분을 다시 읽는다.

‘마젤란’을 읽는 내내 나는 마젤란의 몸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마젤란’을 읽은 뒤에 남미 지도를 펴놓고 마젤란 해협과 푼타 아레나스를 종이가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적 같은 일이란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 발끝에 떨어지는 한 줄기 달빛이다. 그런 영웅적인 인물의 생애조차도 허망하게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 ‘마젤란’이었다.

‘마젤란’을 쓴 작가는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나는 그때까지 츠바이크를 알지 못했다. 첫 만남 이후 나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비롯해 츠바이크 저작들을 웬만큼 섭렵했다. 장편 ‘모르는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부터 단편 ‘보이지 않는 골동품’까지. ‘정신의 탐험가들’도 읽었다. 자전적 회고록인 ‘어제의 세계’를 비롯해 츠바이크의 저작들은 어느 것 하나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 문인편‘에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를 다뤘다. 발자크 연구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교과서 같은 책이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이다. 그런데 1998년에 나온 이 책은 절판이 되어 서점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정가를 주고 어렵게 구했다. 집에 배달된 ’발자크 평전‘을 개봉하면서 연애편지를 받고 자기 방에 들어가 몰래 뜯어보는 청년처럼 설렜다. 나는 ’발자크 평전‘을 읽는 내내 감탄과 경탄을 연발했다.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에 쓴 발자크 이야기는 사실 700쪽에 달하는 이 평전의 요약본에 지나지 않음을 솔직히 고백한다.(그게 츠바이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1881년 1월28일,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10개월 뒤인 11월28일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한 사내아이가 생을 받았다. 슈테판 츠바이크다. 올해는 츠바이크 탄생 140년 주년.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 빈에서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다. 시간과 공간과 혈통이라는 우연성이 운명의 테두리를 그어놓았다.

그가 태어난 1881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보자. 면적은 67만㎢, 인구 5200만. 영토는 아드리아해(海)까지 뻗쳐 있는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비록 1868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체면은 구겼지만 제국의 위용은 여전했다.

제국의 수도 빈은 런던, 파리와 함께 유럽 문명의 중심지였다. 빈에서는 동양 문명, 해양 문명, 이슬람 문명, 슬라브 문명이 주류 문명들과 서로 부딪치며 충돌했다. 빈에서는 매일 밤 최고의 연극, 오페라, 음악회가 열렸다. 도시 골목마다 천재들이 들끓었다.

1881년이면 프로이트는 스물다섯 의과대학생, 클림트는 열아홉 공예학교 학생,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열일곱 학생이었다.

그는 부유한 환경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았다. 도시 전체를 감싼 지적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비범한 청년 츠바이크에게도 지성의 세례가 쏟아졌다. 외가나 친가 친척들은 영어는 기본이고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를 구사했다.

10대에 시집을 출간했고 스무 살에 빈의 유력지 신자유신문 문예란에 산문이 실렸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코스모폴리탄의 인생을 살기로 한다. 1904년 빈대학 철학과를 마친 츠바이크는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베를린, 파리, 런던,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 도시를 유랑했다. 파리에서 1년간 지냈고 런던에서도 장기 체류했다. 파리 시절 그는 릴케와 가깝게 지내며 작업실로 찾아가 로댕을 만나기도 했다.

코스모폴리탄으로서 그는 국제주의와 유럽인주의를 신봉했다. 유대인 정체성과 관련, “나의 부모는 출생이라는 사건을 통해 우연히 유대인이 되었을 뿐이다”라고 썼다. 이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는 유대인 성(性)에 예속되지 않으려 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시오니즘의 창시자이면서 신자유신문 문예란 편집자이던 테오도르 헤르츨과 여러 번 만났다는 점이다. 헤르츨은 츠바이크가 가져온 원고를 읽어보고 그 자리에서 게재를 결정했다. 헤르츨은 소책자 ’유대 국가‘를 저술해 유대인들의 가슴에 시오니즘 운동의 불을 지폈으나 그는 ’유대 국가‘에 그리 감동하지 않았다.

그는 1차세계대전 와중에 전방이 아닌 전쟁성 자료실에 배치되었다. 찾는 이 드문 그곳에서 그는 책의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쳤다. 1차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팔·다리·목이 잘려 나가며 면적 8만3천㎢의 소국으로 쪼그라든다.

그는 1919년 빈을 떠나 잘츠부르크로 거처를 옮긴다. 잘츠부르크에서 그동안 수집한 진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품들을 쏟아냈다. 츠바이크의 전성기는 1920~1930년대다. 그의 이름 앞에는 극작가, 소설가, 저널리스트, 전기작가 4개의 타이틀이 붙는다.

전기작가. 그의 독보적 영역은 역사 인물에 대한 전기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오노레 드 발자크, 찰스 디킨스, 페르디낭 마젤란, 매리 스튜어트,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역사 인물이 그의 펜촉 끝에서 피와 살과 영혼을 부여받으며 새롭게 탄생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인물이 아니었다.

’마젤란 평전‘, ’발자크 평전‘과 같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전율한다. 역사 인물과 합일(合一)이 되는 기분을 맛본다. 다른 전기작가들의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그것은 팔할이 지그문트 프로이트 덕분이다. 프로이트와 츠바이크는 25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빈이라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았다. 두각을 나타낸 시기는 오히려 츠바이크가 빨랐다. ’미친 의사‘ 취급을 받던 프로이트가 빈과 유럽·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부터다.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처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은 실제로 교유했고 잘츠부르크로 가서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1926년 가을 그는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심리학은 위대한 비즈니스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별의 순간‘이 운위된 적이 있다.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순간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말의 저작권자가 바로 츠바이크다. 저서 ’인류의 별의 순간‘(Sternstunden der Menschheit)에서 처음 썼다. 이 책의 우리말 번역본이 ’광기와 우연의 역사‘다.

이 글을 나의 영원한 우상 슈테판 츠바이크 탄생 140주년에 바친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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