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는 이의 슬픔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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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이의 슬픔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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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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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음악이야기

오뒷세우스와 오르페우스

여기, 음악과 관련한 두 편의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해에서 길을 잃은 오뒷세우스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지하의 세계까지 내려간 오르페우스 이야기다. 오뒷세우스는 특정 바다에서 부하들에게 밀랍으로 만든 귀마개를 착용하도록 명령한다. 그 지역에는 여성의 머리와 물새의 몸을 가진 모습의 세이렌 자매가 나타나는데, 그들의 노래를 듣는 자는 바다로 뛰어든다는 전설이 있다. 탁월한 전략가인 오뒷세우스는 부하들을 구해내면서도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어 그들의 노래를 듣는다.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게 물려 죽자 지하세계의 왕인 하데스를 찾아가 자신의 장기인 리라 연주를 들려준다. 이에 감동한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하는데 단 오르페우스가 지상에 두 발을 뻗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는 조건을 건다. 우리는 이 신화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동굴을 완전히 빠져나가기 직전 뒤를 돌아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아내를 구해낼 수도, 바라볼 수도 없는 운명으로 치닫게 된다.



음악의 얼굴

이들 신화 속 음악은 각기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오뒷세우스에게는 죽음의 유혹으로, 오르페우스에게는 구원의 손길로. 과연 둘 중 어떤 음악이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는 우문에 가깝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두 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선율 모두 음악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음악은 인간의 형태를 띤 괴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음악은 죽음의 왕의 심장마저 마저 녹일 정도의 뜨거움이기도 하다. 이 차갑고 뜨거운 존재는 언제 어느 때고 모습을 바꿔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어제는 쳇 베이커의 얼굴로, 오늘은 세이수미의 리듬으로, 내일은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로.

그런데 이 두 이야기에서 궁금한 점이 또 있다. 오뒷세우스는 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며 세이렌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 것일까. 오르페우스는 왜 지상에 두 발을 딛기 직전 뒤돌아 아내의 얼굴을 본 것일까. 두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 각자의 삶이 펼쳐져 있고, 어느 한순간 이 신화 속 인물과 유사한 결정을 내린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발견한다면 그건 자신만의 신화가 된다.



모든 음악에 모든 사랑이

나로선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기 힘들다. 그건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조바심이나, 의심, 방심 같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바로 죽음의 목소리, 죽음의 얼굴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오뒷세우스는 단숨에 죽음으로 데려가는 세이렌의 노래가 궁금했던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죽음과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의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바로 그 정체를 들여다보려는 집요한 마음이 이 둘을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으리라.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그걸 진실이라 불러야 할지도 실은 망설여진다. 모든 이에게 모든 진실이, 모든 음악에 모든 사랑이 담겨 있을 테니.

나는 온종일 작업실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매만지고, LP를 닦고, 책장에서 책을 고르며 보냈다. 가을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놓친 무언가가 그 속에, 나무와 LP와 책 속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음악은 이제 어떤 얼굴로 다가올까. 그리고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까. 내 인생 속 음악은 어떤 얼굴로 남게 될까. 내 이야기 속 음악은 어떤 템포로 흐르고 있을까. 나는 가까스로 새어온 미래의 빛을 바라보며 절대 돌아봐선 안 되는 과거를 바라보려 한다. 거기엔 오래된 음악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보는 존재, 그곳에는 오래된 슬픔과 기쁨이 스며 있는 것만 같다.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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