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부인'은 왜 나가사키에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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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부인'은 왜 나가사키에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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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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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長崎).

일본 규슈섬의 무역항. 나가사키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2차 세계대전을 끝낸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그다음은 하우스텐보스, 나가사키 짬뽕, 나가사키 카스텔라….

1653년 6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서기 헨드릭 하멜을 포함한 선원 64명을 태운 동인도회사 선박은 야빤(일본)을 최종 목적지로 바따비아(자카르타)를 출항했다. 포르모사(대만)를 거쳐 낭가사께이로 항해하던 선박이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 8월15일 표착한 곳이 제주도다. 13년간의 억류 생활 끝에 하멜 일행 7명은 배를 타고 야빤으로 탈출한다. 1669년, 기적적으로 낭가사께이에 도착한 하멜은 그곳에서 13년 동안 받지 못한 월급을 받으려 ‘임금 청구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게 ‘하멜 표류기’다.

하멜이 보고서를 쓴 곳이 나가사키다. 1669년이면 일본은 에도 막부의 한복판. 무사계급을 기반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를 건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에도 막부는 대외적으로 쇄국정책을 폈다. 조선·중국을 제외한 서양에 대해서는 문을 닫은 대외 정책이 200여년간 지속했다.

이런 쇄국정책 속에서도 에도 막부는 서양을 향한 항구 하나를 열어놓았다. 규슈섬 서쪽에 위치한 나카사키항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박들은 이 항구에 무시로 드나들었다. 서양 문물은 동인도회사를 통해서만 일본에 들어왔다. 나가사키에는 네덜란드 거류지가 따로 있었다. 조선을 극적으로 탈출한 하멜은 이곳에 머물렀다.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서양 학문을 란가쿠(蘭學)라 불렀다. 네덜란드는 영어. 네덜란드어로는 홀랜드(Holland).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화란(和蘭)이다. 란가쿠는 여기서 유래했다. 화란은 서양을 대표했고, 란가쿠는 곧 서양 문물을 의미했다.

왜 에도 막부는 네덜란드에 호의적이었을까. 네덜란드 사람은 일본인에게 포르투갈인처럼 천주교를 포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에 최초로 도착한 서양인은 포르투갈 사람. 1543년 일본 땅을 밟은 포르투갈 상인은 일본인에 철포(조총)를 전해주고 일본인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다.



푸치니 동상이 왜 나가사키에?

코로나 이전 나가사키는 한국인이 즐겨 찾는 일본 여행지 중의 하나였다. 네덜란드 테마파크인 하우스텐보스를 둘러본 다음에 나가사키 시내를 여행해본다. 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글로버 가든이 있다. 일본어로는 구라바엔(クラバ?園). 나가사키 관광의 명소다. 스코틀랜드 출신 무역상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이 있던 곳이다.

이 정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 동상이다. 하얀색 양복이 금방 눈에 띈다. 푸치니는 왼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오른손에 중산모를 든 채 어딘가를 쳐다본다. 푸치니 동상이 왜 나가사키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오른쪽의 모자상이 답한다.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이 사내아이에게 어딘가를 가리키는 모습이다. 동상의 기단에는 ‘三浦環の像’라고 음각되어 있다. 미우라 다마키(1884~1946)의 상이다. 일본의 프리마돈나 미우라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여주인공 초초상 역할을 맡았다. 초초상은 게이샤의 예명으로 나비라는 뜻. 이 모자상은 극 중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초초상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미국에 계시는 아빠가 너를 만나러 언젠가 반드시 저 바다로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 아빠를 기다리자.”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꼬마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엄마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다보며 잔뜩 희망에 부푼 표정이다.

‘나비부인’은 1904년 밀라노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 곳곳에서 자주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다.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로 불린다. 그런데 ‘나비부인’의 여주인공 동상이 왜 이곳에?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소설 ‘나비부인’이 1898년 미국의 한 월간지에 발표되었다. 작가는 미국 법률가 존 루터 롱. 일본을 가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누이가 선교사 남편을 따라 일본에 살고 있었기에 일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소설 ‘나비부인’이 인기를 끌자 다시 희곡으로 각색되어 런던에서 공연되고 있었다. 그때 푸치니가 우연히 이 연극을 관람한다. ‘토스카’ 이후 차기작을 물색하던 작곡가 푸치니가 연극 ‘나비부인’을 보고 무릎을 친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나비부인’의 1막은 나가사키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일본식 집에서 시작된다. 미국 해군 장교 핀커튼은 집안이 몰락해 게이샤가 된 열다섯 살 초초상과 계약 결혼을 한다.



‘미스 사이공’은 20세기판 ‘나비부인’

우미성 연세대 영문과 교수는 저서 ‘노란 꽃’에서 서양이 동양 여자에 대해 가진환상과 편견을 파헤친다. 270쪽 분량의 이 책에서 우교수는 ‘나비부인의 탄생’ 이야기에 57쪽을 할애한다. 우교수에 따르면 ‘미스 사이공’은 20세기판 ‘나비부인’이고, ‘나비부인’의 원형은 ‘국화부인’이다.

국화부인? 이런 소설이 있었나. ‘나비부인’ 연구가들은 작가 존 루터 롱이 영어로 번역된 프랑스 소설 ‘국화부인’을 알고 있었다고 99.99% 확신한다.

‘국화부인’의 작가는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로티(1850~1923). 1870년 프랑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로티는 43년을 해군 장교로 근무했다. 로티는 프랑스 군함을 타고 한국·일본·중국을 포함한 태평양 섬들,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 알제리·이집트·터키 등을 돌아다녔다.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한 전 세계를 일주한 셈이다. 당시 프랑스 사람 중에 로티만큼 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은 없었다. 로티는 프랑스 해군이 주둔하는 곳에서 거의 예외 없이 원주민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 로티의 특별한 점은 이런 원주민 여성과의 경험을 로맨스 소설로 각색해 발표했고,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다.

1885년 프랑스 해군은 나가사키에 몇 개월간 주둔하게 된다. 로티는 육지에 내리자마자 다른 나라에서 그랬듯 몇 달간 지낼 게이샤를 찾아 나선다. 그때 로티가 우연히 만난 여성이 열일곱 살 기쿠상(菊さん)이다. ‘기쿠’가 국화다. 기쿠상과의 계약 동거 경험을 바탕으로 나가사키의 풍속과 상상을 뒤섞어 1887년 장편소설 ‘국화부인’을 프랑스어로 출간한다.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 동양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큰 인기를 끌었고, 영어·독일어·스페인어 등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다.

‘국화부인’에서 남자 주인공은 프랑스 장교이고, ‘나비부인’에서 남자 주인공은 미국 장교 핀커튼이다. 이름만 다를 뿐 등장인물의 성격과 이야기의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 우미성 교수의 주장이다.

서양 남자와 동양 여자의 로맨스. 그런데 이 로맨스는 철저한 인종 차별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인종이 다른 남녀의 사랑은 항상 동양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결말이 난다. 은밀한 오리엔탈리즘이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나는 ‘미스 사이공’을 1994년 토론토 시내 한복판에서 감상했다. 환호하는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이 뮤지컬을 보면서 나는 어두운 객석에서 까닭 모를 불편함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그런데 ‘노란 꽃’을 읽고 보니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다.

‘미스 사이공’에서 미군 병사 크리스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는 킴의 나이가 열일 곱이다. 3년 뒤 킴은 크리스의 아들을 혼자 키운다. 킴은 아들에게 미국에 있는 아빠 크리스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나비부인’에서 핀커튼을 기다리는 초초상이 아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나가사키항에서 비롯되었다.

1년 반 이상 금지되었던 해외여행이 ‘위드 코로나’와 함께 해빙기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나는 20여 년 전 패키지 투어로 나가사키를 관광한 적이 있다. 이것저것 보긴 본 것 같은데 하나도 남는 게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아는 게 없는 상태서 주마간산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다시 나가사키에 간다면 천천히 보고 싶은 게 참 많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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