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선물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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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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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새해의 음악 선물



음악 선물

그거 기억하세요? 닿기만 해도 바스락거리는 포장지에 싸여있었던 작은 테이프 말이에요. 라디오에서 직접 녹음한 노래들이 담겨 있었어요. 저는 처음으로 ‘How deep is your love’를 들었고, 빛과 소금을 알게 되었으며, 이현우와 김현철과 이소라를 따라 부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때만 해도 잘 들리지 않았었는데, 노래와 노래 사이에 담겨 있던 그 소리 말입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녹음 버튼 누를 때 힘을 주던 손, 손톱사이로 빠져나가던 연붉은 빛깔, 당신이 숨죽이는 모습, 음악을 듣게 될 사람을 그려보는 그러한 풍경이 함께 들리는 겁니다.

LP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 역시 음악을 선물해주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LP는 저에게 저무는 빛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멀어져버렸고, 투박해보였으며, 불편하기까지 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저를 매혹시켰습니다. 그곳에는 슈베르트와 베토벤, 밥 웰치와 폴 사이먼, 킹 크림슨과 제임스 테일러 같은 아티스트가 있었어요. 저는 그들을 알면서도 알지 못했었어요. 사실 LP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떤 원리로 소리가 된 건지, 음악이 된 건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제겐 하나의 세계이자, 신대륙처럼 와버렸습니다.



음악은 시간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LP를 들으며 시를 썼던 시인의 시간을 엿보고 싶었습니다. 존경하는 시인이 제게 자신이 평생 들어온 LP를 가지겠냐고 물어보았을 때, 저는 강렬한 유혹을 느꼈습니다. 마치 그의 시들이 이 음악으로부터 탄생했다고 여긴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후로 저는 LP를 듣고 쓰는 일을 일종의 수행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긴 기간 연재를 이어오며 바로 그 LP의 시간을 엿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LP는 Long Playing의 약자라고 합니다. Long은 길이의 감각이잖아요. 이건 분명 시간을 나타내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음악은 시간입니다.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부산시 감만동이라는 곳에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감만창의문화촌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거주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한해가 넘어가며 새로운 예술가가 입주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저는 다행히 올해도 이곳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예술가 중 소리를 다루는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소리를 매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셈입니다. 이분이 이곳을 떠나며 제게 귀한 선물을 남겼습니다. CD와 음악서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게 남기면 그 물건들이 더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였습니다. 저는 2022년에 다시 음악을 선물 받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악을 선물하는 이들을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이건 그들의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은 이제 저의 시간과 겹쳐져 하나로 또 둘로 분리되기도 하겠지요. 하나 혹은 둘, 그 사이에서 녹아난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음악에 대해 쓰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간을 제가 대신 느끼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결국 제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나도록 되어 있어요. 음악이란 녹아나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음악을 조금 더 듣고 가만히 시간을 즐기는 시간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모두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시간 많이 받으십시오. 복도 많이 받으십시오. 물론 음악과 함께라면 더없이 감사하겠습니다. 누군가의 사적인 LP라도 말이에요. 제 시간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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