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의 사회적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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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의 사회적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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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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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상 주식회사 이사는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를 진다. 미국법은 이사가 ‘회사와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진다고 하는데 작은 것 같지만 큰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의무를 도입하기 위해 2022년 3월 한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ESG의 시대에 주식회사 이사가 회사, 주주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충실의무를 지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면 어떨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사의 의무에는 이사가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할 의무도 포함될 것이다. 그 경우 “기후변화에 대처한다”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이사가 글로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행동을 해야할 의무란 의미도 확정할 수 없고 실현도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그 의무는 경영진이 기후변화 대처에 기여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전략을 마련하고 이행하는지를 감시할 의무와 그와 관련한 공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감시할 의무가 될 것이다. 크게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그에 맞게 정비할 의무로 볼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이 생각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법률가 자프 윈터라는 사람이 그 중심 인물이다. 윈터의 제안으로 25인의 네덜란드 변호사와 법학교수들이 2020년 5월에 네덜란드 최대의 경제지를 통해 ‘주식회사 이사회의 기후변화를 포함한 사회 문제에 대한 의무’라는 개념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실질적인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사회 전체가 기본적인 방향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 이사회의 사회적 의무는 실정법에 도입 가능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법원도 그러한 움직임에 보조를 맞춘다. 2021년 5월에 네덜란드의 한 환경단체가 로열더치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헤이그지방법원이 셸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네덜란드 민법상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셸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2019년 대비 45% 줄이도록 명령했다. 셸의 생산시설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기후와 환경 변화를 일으켜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건강을 손상시키는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셸은 그를 방지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한 소송에서도 미국 1위의 아이스크림을 제조회사 블루벨 이사들에게 충실의무 위반이 인정되었다. 회사가 생산하는 식품의 안전성에 관해 이사회가 그를 감시감독하는 절차적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회사가 감독당국으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았고 회사 내부의 점검부서에서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에는 아무것도 보고되지 않았으며 그에 필요한 절차도 마련되지 않았다. 식품회사의 이사회가 식품안전과 관련된 문제들을 감시하는 하부위원회를 두지도 않았고 그 외 어떤 시스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사들도 식품의 안전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었다.

법원은 식품안전 컴플라이언스가 블루벨과 같은 회사에는 사업의 영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블루벨 이사회는 고객 3인이 리스테리아로 사망한 후에야 문제를 인지하였다. 그때는 이미 모든 제품이 리콜되고 생산시설은 폐쇄되고 직원 1/3이 직장을 잃은 후였다. 1907년에 창업한 유서 깊은 회사가 도산 위기까지 갔다.

이사의 사회적 의무라는 생각을 지침으로는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법원에 의해 집행될 수 있는 실체적 의무로 인정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선언적이고 정책적인 의의만 부여하겠다면 사회적 의무의 도입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굳이 어렵고 오래 걸리는 법률의 개정이라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다른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1년 5월에 있었던 엑슨모빌 주주총회에서는 회사의 기후변화 관련 로비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자는 주주제안이 63.8%의 지지를 받았다. 같은 날 셰브론 주주총회에서는 회사가 회사 고객들이 유해물질 배출을 줄이도록 배려하고 공조하라는 주주제안이 60.7%의 지지를 받았다. 주식회사 이사의 의무는 그 해태가 법률적 책임을 발생시키는 종류의 의무도 있지만 단순히 특정한 방향이나 내용으로 행동해야 할 행동준칙에 해당하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주주들이 그를 지지하는 경우 법률과 관계없이 개별 기업 차원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이사회의 사회적 의무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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