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장과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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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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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포항을 찾은 지인이 이곳의 포장마차를 가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지역 해산물이 나오는 근사한 포장마차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포항에서 포장마차를 본 기억이 없어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포항 도심부에 ‘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포장마차촌이 만들어졌다. 도심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지자체에서 상당한 공을 들인 것 같았지만, 초반에만 반짝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번듯한 상가가 즐비한 시점에 이제 포장마차가 살아남기 어려운 여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법하다.

하지만 2000년하고도 22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포장마차가 성업 중인 곳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의 종로3가 뒷골목이다. 탑골공원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 포장마차 수십 대와 족히 일이백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통으로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가가 문 닫은 시간에도 잠들지 않는 도심 밤 풍경을 만들면서 명소가 되었다. 다른 ‘먹자골목’들과는 달리 젊은 층, 노년층이 모두 즐겨 찾는 특이한 장소이기도 하다.

말 나온 김에 포장마차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우리나라에서 포장마차는 드라마나 소설에서 서민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단골로 등장하는 배경이다. 이런 고달픈 서민을 위한 식당 겸 술집으로서의 이미지는 이미 195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리어카 위에 합판을 얹고 광목천을 대충 둘러 만든 조악한 노점이었다. 하지만 먹을 것 변변찮던 전후 시절에 참새구이나 닭똥집 같은, 요새 같아서는 별미로나 먹을 안주를 팔면서 자리 잡아갔던 것이다.

60-70년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포장마차는 ‘최후의 생계수단’이라는 이미지도 가지게 된다. 지방에서 무턱대고 상경한 저소득층이 먹고살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탄광촌에 ‘막장’이 있다면 도시에는 포장마차가 있었던 것이다. 도시로 사람이 몰려들수록 포장마차와 노점상들은 더욱더 늘어났고, 시장과 골목길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광경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풍요의 80년대가 열리면서 포장마차는 위기를 맞는다. 소득증가와 ‘소주보다는 맥주’라는 취향 변화로 서민들도 포장마차를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8올림픽 유치로 시작된 도시미화 작업으로 포장마차의 설 곳은 더욱 줄어든다. 그렇다고 포장마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경제성장과 수출증대 속에 야근은 기본이던 시절,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늦은 밤 골목에서 어스름한 조명으로 자리 잡고 꼼장어나 닭꼬치 같은 새로운 안주 거리를 제공하면서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렇게 보면 포장마차는 그냥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시대별로 나타난 도시 생활의 틈새를 알게 모르게 메꿔 주면서 그 존재의 이유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2022년 현재의 포장마차들은 어떤 이유로 남아 있고 또 더러는 성업 중인 것일까. 술집, 식당이 없어서는 아니고 가격이 싸서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포장마차만이 메울 수 있는 틈새가 도시에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게다.

이 틈새를 만드는 첫 번째 키워드는 ‘업무지구’이다. 기업들이 잔뜩 밀집한 업무지구, 그 뒷골목에는 여전히 포장마차가 성업 중이다. 당연히 주 고객은 회사원들이다. 업무지구가 발달한 도시는 ‘주야간 인구비율’이 높다. 낮 시간에 활동하는 인구가 밤에 비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런 도시에는 예외 없이 포장마차도 활발하다. 일시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회사원들은 오가는 길에 언제라도 동료를 붙잡고 들릴 수 있는 간편한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식당과는 다른, 포장마차만의 분위기와 역할이 분명히 있다.

더 중요한 두 번째 키워드는 ‘대중교통’이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도시라야 포장마차도 살아남는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한 도시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이 생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나와 각자 사는 아파트로 흩어지기 전, 거기서 친구나 이웃을 마주쳐 잠시 들릴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포장마차가 자리 잡는 곳이다. 자가용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야 하는 도시에서는 포장마차가 자리 잡으려 해도 그럴만한 목이 생기기 어렵다.

업무지구나 대중교통이 발달한 도시라야 포장마차가 살아남는다니, 노점에 불과한 업종을 살리는 조건치고는 너무 과분한 것 같다. 하지만 작은 이끼도 공기와 물이 좋은 환경에서 나타나듯, 활성화된 도시라야 비로소 포장마차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포항 야시장의 성공이 어려웠던 이유도 알만하다. 업무기능이 떠나고 소매업만 남고 주야간 인구비율이 낮은 포항 도심부 여건에서 포장마차가 뿌리내리긴 쉽지 않은 것이다. 밤 시간에 야시장을 찾아 굳이 자가용을 타고 멀리 도심까지 가는 모습도 기대하긴 어렵다.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이렇게 결론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야시장이 도심을 살리는 게 아니라 도심이 살아나야 비로소 야시장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도시재생에 쉽고 빠른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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