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들을 넘는 다양한 정체성들의 미래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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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들을 넘는 다양한 정체성들의 미래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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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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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런던 뉴몰든에 자리한 한글학교, 런던한겨레학교에 대한 다큐 <런던한겨레학교 연대기> 상영회에 다녀왔다. 한글학교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글을 배워주는 학교라는 점에서, 이곳은 세계의 다른 나라에 터를 잡은 이주민들이 모국의 언어, 전통, 뿌리를 지켜나가려 만든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다.

먼저 1972년에 설립된 체싱천 런던한국학교가 영국의 한인 사회의 한국 교육을 시작했다면 독일에서는 아헨한글학교가 1973년, 마인츠 무궁화한글학교가 1975년에 설립됐고, 프랑스에서는 1974년 파리한글학교가 문을 열었다.

2020년 말 기준 26개국에 걸쳐 115개의 한글학교가 유럽에 존재하는데 다큐가 보여준 런던한겨레학교의 특별한 점이란 탈북민들이 주도적으로 자녀들에게 한민족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개교를 준비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남북한 출신에 구애 없이 60명 정도의 학생들과 17명의 교사가 제3국에서 일종의 ‘통합’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 초반에 잘 그려진 재영 탈북민들의 고군분투 학교 세우기 노력을 보노라면 “지금까지 이런 학교는 없었다!”라는 <런던한겨레학교> 포스터 카피에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민들에 대한 서사는 아직 많다고 볼 수는 없는데 이러한 서사들은 자유를 위한 투쟁, 반공, 간혹 자기개발의 꿈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차별, 혐오, 고립과 같은 키워드들이 전면에 들어온다. 그런데 다큐가 학교를 세우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한국을 지나 영국에 정착해 난민 인정과 시민권을 획득한 탈북민들의 자기서사는 제3국, 즉 어떤 남북한의 위계, 받고 주는 관계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동등해진 공간에서 솔직담백하게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라는 측면이 새롭다.

영국 교육시스템에서 자라며 이미 영어가 더 편한 아이들이 아직 북에 있는 가족을 생각해 한글을 배우고 함께 뛰어놀며 부모들이 밥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는 작은 생활공동체의 모습, 고난의 행군 이후 어려워진 북한을 떠나 낯선 땅에 적응하면서도 그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얼굴들은 그들이 새로운 땅에 자리잡기 전에 삶을 먼저 꾸렸던 한국 사회에 새로운 질문들, 감정들을 가지도록 만든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되어 2002년 연간 1000명, 2006년 연간 2000명을 초과한 탈북민 입국자 수는 2012년 이후 감소세를 보였지만 2016년 말 3만명을 넘어섰다. 2000년대 후반 ‘피크’를 보였던 탈북민 입국자들은 왜 한국을 떠나 제3국행을 선택했을까.

다른 한편으로 재영탈북민들이 자신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려 했지만 학교로 사용할 공간도, 가르칠 교사도 운영자금도 만만치 않아 겪은 초기의 난관과, 이제는 교사도 학생이 남에서 왔는지, 북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 한겨레학교의 경험은 평화공존, 통합에 어떤 새로운 내러티브를 제공하는가.

런던한겨레학교 아이들, 부모들을 보며 그들이 넘어온 경계들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중국에 장기간 있다가 한국에 들어오기도 누군가는 3개월여 기간에 중국, 라오스, 태국 등을 거쳐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누군가는 바다로 DMZ를 건너온 경우도 있다. 필자는 2011년 여름 단체로 단둥 답사를 간 일이 있는데 당시 단둥 쪽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 신의주에서 북한 아이들과 주민들이 수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까이 보면서 압록강의 북중 국경과 우리의 DMZ 경계가 얼마나 다른 풍경인가를 실감했다.

또한 국경지방 출신이 80% 가까이 차지하는 탈북민 인터뷰를 하며 분단으로 반도에 갇힌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필자와 중국이 지척인 압록강, 두만강변에서 살았고 국경을 넘은 분들의 경계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다른가 깨닫곤 했다. 평화, 통합의 미래가 다양한 경계를 물리적으로 합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하며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알아가는 것이라면, 국경의 다양한 풍경들, 월경·초경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우선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1902년 12월 121명이 인천 월미도 해상의 일본 우선회사 소속 현해탄호에 올라 이듬해 1월 하와이 오하우섬 사탕수수 농장에서 생활을 시작했다는 국내 첫 공식 이민의 역사부터 가 그린 식민지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또 미국으로 옮겨간 이들의 3세대, 4세대 이야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한국행을 택한 ‘고려인’들의 이야기들은 2021년 말 기준 735만여명의 재외동포, 195만여명 국내체류외국인, 3만여 탈북민 시대에 경계를 넘어 적응하고 공존하는 방법, 윤리에 대해 다양한 성찰을 제공한다.

평화학연구는 고질적 분쟁의 공간에서 평화구축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의 평화의 기억을 모두가 미리 공유하는 것, 또 그 합의의 과정에서 그 어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반도 평화, 통합에 대한 미래 역시도 장기적 관점에서 서두르지 않고 남과 북의 사람들, 남북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미래대화를 통해 평화를 준비하는 것이 미래세대의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김태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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