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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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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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푸른 천장에 보석을 무수히 박아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에 홀로 앉은 새처럼 외로웠던 나는 별들이 부러웠다. 친구들이 저렇게 많으니 얼마나 좋을까라며···. 그런데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본 우주는 정반대였다. 별들은 모두 고독한 존재였다. 우주공간은 광대했고 별과 별의 거리는 인간의 두뇌로 상상조차 안 될 만큼 멀고 멀었다. 별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을 것이라 여겼던 우주공간이 사실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가. 대기는 공기로 채워져 있고 대지는 흙과 물, 나무와 풀로 덮여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채워져 있고, 바다와 호수는 물로 가득 차 있다. 온종일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전화기의 액정 유리도 빈틈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모든 물질은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세포와 유기물로 형성된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시세계를 다루는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세상 모든 물질은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물질을 쪼개면 분자가 되고, 분자를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가 된다. 이 상태에 이르면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없어진다. 그저 물질을 형성하는 최소입자일 뿐이다. 그런 원자는 너무나 작아 예전에는 내부구조를 알 수 없었지만,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양자 현미경을 통해 원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원자는 중심에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핵이 있고 주변을 맴도는 전자들이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텅빈 정도가 우주공간보다 더 멀고 공허하다고 한다.

원자 내부의 빈 곳이 없어지도록 압축하면 사람의 몸은 얼마만큼 작아질까. 그야말로 먼지 한 톨 크기도 되지 않는다. 지구상 모든 인간을 합쳐도 수박 한 덩이보다 더 작다고 한다. 경이롭지 아니한가? 더는 작아질 수 없는 최후의 입자도 실상은 그 속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

만약 원자 내부가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죽음이다. 전자마저 이동하지 못하면 화학적 결합이 일어날 수 없어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영원한 멈춤이 되기 때문이다. 비어 있다는 그것이야말로 만물의 본질이다. 삶도 그러하다. 뒤돌아보면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은 수많은 결핍을 겪었던 시절에 있지 않았던가? 모두를 충족시키고, 모두를 웃게 하며, 모두를 울게 하는 그런 세상이 없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탐욕에 지배당하고 있는 인류는 이 상태로 자연과 공존할 수 없고, 영원히 번영할 수 없으리란 것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믿었던 궁극적 진리의 지향점을 바꿔야 한다. 우주 만물의 본질처럼 비움의 가치를 향해야 한다. 우리의 선조가 수천 번 반복한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인류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은 모두가 힘들고 빈곤한 상태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비교적 풍요하거나 먹고살 만할 때 발생했다. 왜 그럴까. 똑같은 세상에 “너는 잘 먹고 잘사는데 나는 왜 힘들고 어렵게 살아야 하나”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극도의 폭력이 동반된 잔인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최후를 맞는다. 세상을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고,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무덤 옆에 굴을 판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삶도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질 것이고 삶의 흔적들은 안개처럼 흩어져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영혼이 떠난 육신은 남으나 곧 흙 속에서 분자나 원자로 분해되어 다시 최초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일부는 흙이 되고, 일부는 풀뿌리로 흡입되어 잎새 한 조각이 될 것이며, 더러는 바람이 되어 허공을 떠돌다 누군가의 호흡이 되기도 할 것이다.

죽음 속으로 움켜쥐고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여,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가득 찬 상태”를 추구하지도, 갈구하지도, 이르기도 바라지 마라. 굽이치는 굴곡에서 삶은 역동한다. 꽉 차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태를 쫓아가면 가장 불행한 상태로 끝을 맺는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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