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누군가는 그대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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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누군가는 그대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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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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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간다. 도심 속 여름에서 가을로의 여정은 노린재와 매미와 잠자리의 바톤 터치 순이다. 소낙비와 폭염의 기승에도 곤충은 이 규칙을 한 번도 바꿔본 적이 없다.

전에 살던 곳은 숲을 마주하고 있어 여름이면 곤충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오래된 아파트를 허물고 지은 곳이라 이 구역에서 장기거주해온 곤충들이 텃새를 부렸다. 서쪽으로 난 작은방 창문을 열면 노린재 수십 마리가 금세라도 쳐들어올 것처럼 방충망에 붙어 나를 엿보고 있었다. 처음엔 기겁했지만 차츰 귀찮아졌다. 철벽방어로 막아내는 동시에 창에서 떼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내 집에 들어온다 해도 녀석들에게 이로울 리 없는 침투였다. 그렇게 쌍방이 번거롭고 소득 없는 행태를 매해 여름 반복했다.

그 많은 노린재는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 고개를 들면 십 수 미터가 훌쩍 넘는 아카시나무, 떡갈나무, 은사시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노린재가 그곳에 있었다면 멀찍이 내가 보였을 눈높이다. 나는 땀에 번들한 얼굴로 거실의 에어컨 냉기를 선풍기 바람으로 끌어넣으며 작은방 책상에 앉아 있곤 했다. 나의 여름은 냉기와 습기가 교차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박스에 있었고 그들의 여름은 서늘하고 울창한 숲속에 있었다. 가끔 더듬이가 데일 듯 거칠하고 뜨거운 콘크리트 외벽에서 수모를 당하곤 하지만 말이다.

곤충 맛집인 건지, 매미도 툭하면 내 집에 찾아와 울어댔다. 그 마음은 알겠는데, 방충망에선 아무리 울어봐야 짝을 만날 수 없을 터였다. 어서 숲으로 돌아가라고 가운데손가락을 빳빳이 튕겨 숲 쪽으로 날려 보낸 적이 숱하다. 무사귀환 여부는 오로지 매미의 ‘운빨’이다.

일군의 곤충을 돌려보내고 방충망을 활짝 열면 습한 여름공기가 집안으로 훅 밀려들어왔다. 공기는 후텁지근했지만 어딘가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녀석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을 힘껏 살아내기를, 새에게 잡아먹히거나 인간에게 밟히지 말고 무탈하게 한살이하기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이사 온 아파트는 구석구석 공동정원이 가꿔져있다. 우리 동 앞에는 자작나무와 대나무가 심겨져있어 작은 정원 사이로 바람이 지나는 소리가 생생했다.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자작나무 정원에서는 교향악이 파노라마를 자아냈다.

눈앞에서 사라진 사람들, 끊어진 소식들, 물에 쓸려간 평생의 밥벌이, 끝내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 한밤중에 거실 창을 열면 수피가 희끄무레한 자작나무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수취인이 사라진 편지지 위에 우두커니 서있는 연필 같았다. 밤새 바람에 흔들리다 아침이면 수관이 땅을 향해 휘어진 채 잎사귀마다 빗물을 똑똑 떨어트렸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물러간 하늘에 해가 났다. 연한 회색으로 젖어있던 자작나무 수피가 본래의 색을 되찾을 무렵 잠자리를 만났다. 긴 소낙비에 고사목마다 버섯이 피어오른 풀숲에서였다. 그것은 활짝 편 날개로 온 세상을 느끼는 듯 억새 이파리 위에 정지상태로 앉아있었다. 세상의 모든 무도한 것들에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는 무심한 얼굴을 하고서다. 몸이 빨갰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고추잠자리인 것은 아니란다.

암컷과 수컷 모두 온 몸이 새빨간 ‘하나잠자리’는 기후변화지표종으로 1985년 제주도에서 발견됐다가 2000년 초반 중부에서 이따금 발견되고 있단다. 점점 변화무쌍해지는 기후에 곤충들은 이미 적응을 마쳤다. 강해서가 아니라 유연해서다.

몸의 색깔이 어떻게 변했건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잠자리는 여름이 지나는 길목의 이정표이자 가을이 오고 있다는 알림장이라는 사실이다. 광폭한 여름이 떠올라 괴로웠던 매미 울음소리가 뚝 그치면 이내 귀뚜라미가 소슬하게 울어줄 것이다. 이 가을 누군가는 그대 옆에 있으니 마음을 놓으라고, 다독여줄 것이다.
안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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