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시작하며
  • 김희동기자
‘편지’를 시작하며
  • 김희동기자
  • 승인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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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안녕하세요.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낮도깨비 같이 불쑥 소식을 전해봅니다.

저녁노을이 형산강을 치자 빛으로 물들입니다. 선홍색이 진양조로 느리게 느리게 번져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로, 마을과 마을 사이로 하늘과 땅이 생긴 그날부터 찰나의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무한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2일자로 경북도민일보 제2사회부 부국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널리스트에게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은 숙명이며 그것을 멈추면 부패한다’고 선배 기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어정쩡하게 서른 끝 자락에 시작한 기자를 천직이라 생각하고 지금껏 현장을 다녔습니다. 글 쓰는 것 좋아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는 일기를 하루에 2~3번씩 쓰기도 했으며 군위문편지, 연애편지 대필 등 어려서부터 싹수가 보였는지 이렇게 글쟁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참 오래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연로하신 부모님들 건강과 아직도 배움의 길에 있는 자녀들, 직장을 얻지 못한 큰딸과, 모태솔로인 아들, 수시로 저려오는 손발 저림과 불면증에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아니면 축제로 가득한 이번 주말 혹시 여행을 준비하고 있나요. 코로나19로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옷을 꺼내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는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신발장에서 신발도 꺼내 신어보고 한참 발끝을 쳐다보다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다 시무룩해지는 표정마저 읽히는 듯합니다. 괜찮습니다. 어느 인기 강사의 말처럼 “딱 좋아, 지금 그대로가 딱 좋아” 당신은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답고 멋집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서녘하늘이 고와서 코끝이 찡하더니 이내 눈가가 젖어듭니다. 노을은 빌딩숲을 비집고 얼굴을 보여주다 어느 순간 고가도로 위에서 드러내다 마침내 서산너머로 까무룩 모습을 감춰버립니다. 날씨 변화에 따라 새색시 연분홍 열두 폭 치마를 펼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비 개인 뒤는 수묵화가 걸린 듯도 합니다. 산 어깨에 걸려 경계가 분명치 않은 해넘이를 바라보면서 하루의 피곤함을 잊게 됩니다.

노을은 태양이 뜨거나 질 무렵에 하늘이 붉게 보이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태양이 지평선 부근에 있을 때에는 햇빛이 대기권을 통과하는 경로가 길기 때문에 산란이 잘 되는 푸른색의 빛은 도중에서 없어지고 붉은색의 빛만 남게 됩니다. 이 빛이 하층의 구름 입자 때문에 붉게 보이는데 대기 중에 미세한 먼지나 연기 입자가 많이 포함된 날일수록 빛의 산란이 많이 이루어지므로 노을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어떤 날은 하늘의 절반 이상이 불붙은 듯 활활 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노을 바라보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사는 별 B612호에서 마음이 적적할 때 의자를 조금씩 뒤로 옮겨가며 노을을 감상했지요.

‘한번은 하루 동안 44번이나 노을을 본적이 있어요’, ‘아저씨도 알죠… 몹시 쓸쓸할 때면 노을이 더 좋아진다는 거… ’

어린 왕자는 왜 그렇게 의자를 물러가며 노을을 바라보았던 것일까요. 어두워질 무렵은 하루 중 자신과 대면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입니다. 작은 행성에 혼자 살면서 외로울 때, 누군가 그리울 때 노을은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경북도민일보가 당신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입니다.”

출근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기자의 애교로 봐 넘겨 주실거죠. ‘웃을 땐 여럿이 웃고 울 때는 혼자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다가가는 친구가 참 친구이며 세상에 친구만한 우군은 없습니다. 어느 날 찻잔을 마주하거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천군만마(千軍輓馬)의 친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편지를 줄이며 내내 건강하시기를 바라봅니다.

추신: 아, 그리고 <문화칼럼>으로 편지 시리즈를 시작함을 알려드립니다.

김희동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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