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냄새’
  • 모용복국장
‘죽음의 냄새’
  • 모용복국장
  • 승인 2022.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풍경
나이를 먹으며 눈귀기능 저하
후각만은 기능이 갈수록 향상
사상자 300여명 ‘이태원 참사’
10년전 ‘죽음의 냄새’ 떠올라
전국이 추모 분위기로 떠들썩
政爭·무사안일 행정 돌아봐야

나이를 먹으며 가장 먼저 나빠진 게 눈이었다. 컴퓨터를 오래 하다 보니 시력이 저하되었고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면서 안구건조증이 심해졌다. 밀폐된 공간에 몇 십분만 있어도 눈이 아파오고 머리가 아프다. 휴대폰과 함께 안약은 이제 어디를 가나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 됐다.

다음으로 귀가 나빠졌다.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자주 한 탓인지 어릴 적 귀앓이를 자주 했다. 하지만 병원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왼쪽 귀의 청력이 신통찮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갈수록 더 안 들린다. 오른쪽은 그대로인데 왼쪽 귀만 갈수록 청력이 감퇴되고 있다. 나쁜 것은 진행 속도도 빠르다.

나이를 먹으면 몸의 기능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 때 친구 놈들과 만나면 대화의 절반 이상은 골프 얘기였다. 리모컨을 만지다 어쩌다 골프채널이라도 나오면 ‘저런 걸 왜 방송으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채널을 돌렸다. 그러다 어느듯 ‘방구석 1열’ 1순위가 골프방송이 됐다. 그런데 골프얘기를 좀 하려 드니 이제는 임플란트 얘기를 하려 든다. 다들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다.

모든 몸의 기능이 내리막을 향할 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아니 오히려 기능이 향상되는 감마저 든다. 바로 후각이다. 의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몰라도 나이가 들면서 갈수록 냄새에 예민하다. 시력과 청력이 저하되니 후각에라도 의존해야 한다는 생존법칙이 작용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난 주말, 9세기 통일신라시대 불교 유물이 무더기로 나왔다는 포항시 신광면에 있는 법광사지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가 차창에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들녘에는 서 있는 벼보다 누운 볏짚들이 더 많았다. 추수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창문을 반쯤 내리니 비에 젖은 볏짚 냄새가 훅 스며왔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강렬한 내음이다. 농촌에서 자라 벼 냄새에 익숙했지만 이날만큼 강렬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오랜 신문쟁이 생활을 하다 보니 석유 냄새 나는 신문 냄새(사실은 인쇄 과정에서 들어가는 잉크 냄새겠지만)가 친근하다. 사과나 배, 감과 같은 과일들을 신문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거나 손톱과 발톱을 깎을 때도 신문은 유용하다. 하지만 일부러 냄새를 맡지 않는 한 냄새를 맡을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일요일 오전 편집국에 발을 들여놓으면 온통 신문 냄새가 진동한다. 주말 동안 밀폐된 사무실에서 책상마다 수북이 쌓인 신문들이 사무실 안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10여 년 전 심야에 구마고속도로를 달리다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그냥 지나치려다 큰 사고인 것 같아 갓길에 차를 세우고 현장으로 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부서진 차에서 흘러나온 오일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 때 그 ‘죽음의 냄새’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난달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사망자 156명을 포함해 사상자 300여명이 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태원 좁은 골목길에 핼러윈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압사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성인 남성의 경우 자기 체중의 절반이 조금 넘는 40kg 무게의 압력을 30초만 받아도 엄청난 불편을 느낀다고 한다. 이보다 조금 무거운 60kg의 압력을 40분 정도 받는다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이번 이태원 참사 사망자 중 10~20대 젊은 여성이 많고 전체 여성 사망자가 남성의 두 배나 되는 피해가 발생한 것도 이런 연유(緣由)다.

TV와 사진으로 참사현장을 지켜보면서 10여 년 전 그 ‘죽음의 냄새’가 또다시 느껴져 몸서리 쳤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주로 머리가 담당하지만 후각은 고스란히 온몸으로 전해져 고통은 배가 된다. 겹겹이 쌓인 사람들에 깔려 피해자들은 엄청난 압박감과 고통 속에서 마지막 생명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라 안은 정치권을 비롯해 전국이 추모 분위기로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생때같은 젊은 목숨들을 156명이나 숨지게 하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

태풍이라는 천재지변으로 피해가 났는데도 복구에 바쁜 지자체장과 대기업 회장을 국감장으로 불러들여 책임을 추궁하는 정치권의 정쟁놀음과 정부의 무사안일식 행정이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지는 안았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모용복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