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의 기적
  • 모용복국장
봉화의 기적
  • 모용복국장
  • 승인 202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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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봉화 아연광산 매몰 광부 2명
열흘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돼
인간의 강한 의지가 낳은 결과
이태원 참사로 전국민 애도속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 전해
인간이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전 세계에서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가장 오래 생존한 경우는 1979년 오스트리아의 디아시 안트레아 마하베츠(당시 18세)가 기록한 18일이다. 이 불행한 세계기록은 마하베츠가 가벼운 사건을 일으켜 경찰 유치장에 홀로 갇혔다가 경찰들이 그가 수감된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세운 기록이라는 점에서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방글라데시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열아홉살 소녀 레쉬마 베검은 2013년 4월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사고현장에서 17일 만에 구조됐다. 사고 당시 건물 2층공장에서 일하다 잠시 기도실에 들른 그는 한 순간 가로 30㎝, 세로 45㎝의 작은 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그가 이날 도시락 대신 주머니에 챙겨온 건조식품과 물이 생명줄이 되어 생존할 수 있었다.

33명이 무더기로 생환한 경우도 있다.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 코피아포의 산호세 구리광산 붕괴사고로 광부 33명이 지하 700m 갱도에 매몰되고 말았다. 당시 모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사고 17일 후 생존자 확인을 위해 뚫고 내려간 구조대의 드릴에 ‘피신처에 있는 우리 33명 모두 괜찮다’는 쪽지가 함께 올라왔고 사고 발생 70일 만에 전원 구조됐다. 이들은 지하 700m 어둠 속에서 69일 동안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소량의 비상식량을 33명이 공평하게 나누면서 서로 믿고 의지한 끝에 마침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극적인 생환을 보여준 사례는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매몰된 박승현(당시 19세) 양은 음식은 물론 한방울의 물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17일을 견뎌내고 비교적 건강하게 구조됐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적과도 같은 생환이라는 데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물 한 방울 먹지 못한 채 죽음의 공포와 싸워가며 무려 377시간을 버텨낸 것은 생존에 대한 강인한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이보다 앞서 1967년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에서 광부 양창선(당시 36세) 씨는 지하 125m 갱 속에 갇혔다 15일 9시간(368시간)만에 구출됐다. 다행히 양씨는 매몰된 뒤부터 구조대와 계속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갱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목을 축일 수 있어 생존이 가능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6시께 봉화 재산면 아연 채굴광산 제1 수직갱도에서 펄(토사) 900여톤이 아래로 쏟아지는 사고로 광부 2명이 지하 190m 갱도 내에 갇혔다 10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이태원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는 때에 모처럼 들려온 희소식이어서 더욱 반향이 컸다.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열흘 동안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애타게 지켜봐야 했다. 구조당국이 천공기 11대를 동원해 밤낮없는 구조작업으로 갱도 내에 구멍을 뚫는데까지 성공했지만 광부들의 생존신호가 없자 더욱 가슴이 타들어갔다. 가족들은 광부들이 혹시나 생존의지를 잃을까봐 손편지를 써서 낚싯줄로 연결해 내려보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광부들은 비닐을 둘러 추위를 막고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으며, 작업할 때 가져간 커피믹스를 먹고 커피믹스가 떨어지자 갱도 안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면서 열흘을 버텼다. 또 갱도 내에서 구조 당국의 발파 소리를 들으며 희망을 갖고 서로 의지하면서 버텼다고 한다. 이들이 221시간 동안 칠흙같은 갱도에 갇혀 시시각각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와 사투를 벌인 끝에 무사히 생환할 수 있었던 것은 생존에 대한 강인한 의지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물만으로도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의식이 흐려지고 정신이 혼미해 진다고 한다. 햇빛 한 줌 안 드는 완전한 암흑의 지하 190m 갱도 안이라면 생존할 확률은 더욱 희박해 진다. 봉화 매몰 광부 2명이 열흘 만에 무사 생환한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는 과학적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이 빚어낸 결과다.

서울 한복판에서 150여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로 대한만국은 지금 너무나 큰 슬픔에 잠겨 있다. 북한은 우리의 슬픔과 애도를 축복이라도 하듯 하루가 멀다하고 미사일을 펑펑 쏴대고 있다. 국민은 슬픔에 잠겨 있고 나라는 안보 위협에 처한 더없이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저 경북 봉화 산골 광산에서 들려온 희소식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내몰려도 용기와 의지만 있다면 길은 있다는 것을.

모용복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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