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공동화, 누가 유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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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공동화, 누가 유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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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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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많은 지역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가끔씩 ‘도시재생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아마도 그에 대한 가장 간단명료한 답은 ‘도심공동화를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심공동화는 그럼 누가 일으켰는가?’라는 질문까지 나온다면 거기에는 어떤 답이 있을까.

얼마 전 사업 심의차 다녀왔던 경남에 있는 한 도시의 형편이 위 질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답이 되어 주는 것 같다. 인구 30만 대의 다들 알만한 중소도시이다. 임란 때의 사연이 깃든 촉석루가 있는 곳이라면 너무 많은 힌트가 될까. 구불구불 지나가는 남강이 볼거리를 만드는 중에, 먹거리로도 빠지지 않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럼에도 이 도시 역시 공동화를 피해 가기는 어려운가 보다. 역시 구도심부 재생 사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도시의 동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처음 보는 경관에 우선 놀란다. 우뚝 선 주상복합 빌딩과 단지형 아파트, 사이사이 정돈된 공원이 수도권 여느 신도시 같은 모습이었다. 곧이어 마주친 LH공사 건물 때문에 의문은 바로 풀렸다. 바로 ‘혁신도시’였던 것이다. 알다시피 혁신도시는 균형발전 차원에서 정부 기관, 공기업 등을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사업이다. 모든 지방도시가 갈망하는 귀한 기회를 얻은 지역인 만큼, 새로 만든 거리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고 활기가 있어 보였다.

다시 출발해 다리를 건너 서쪽으로 나아가니 또 다른 도시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반듯반듯한 도로망과 큼직한 상가건물, 그리고 아파트촌들이었다. 공공청사 건물도 보이고 제법 높은 호텔들도 눈에 뜨인다. 혁신도시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리 오래된 시가지는 아니었다. 큼직한 쇼핑센터도 보이고 사람들도 여전히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강을 또 한 번 건너고 나니, 갑자기 공동화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한다. 낡은 도로나 건물과 같은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대로변부터 자리 잡은 자잘한 제조업체나 빛바랜 상점 간판이 공동화를 알려주는 더 직접적인 신호이기 때문이다. 오륙십 년 이상은 된 것 같은 주택촌과 시장길, 골목길을 돌아 드디어 심의 현장에 도착한다. 동에서 서로, 말 그대로 도시를 가로질러 가장 새것에서부터 헌것까지 고스란히 들여다본 여정의 종착지라고나 할까.

그곳 구도심 한 가운데에서 보게 된 시민들의 재생 노력에는 감동적인 부분이 많았다. 한때 동네의 아지트와 같았지만, 영업이 중단된 지 오래인 한 목욕탕은 문화 카페로 새 단장 중이었다. 다들 떠나고 없지만, 젊은 시절 추억을 더듬어 돌아온 한 중년 사진작가가 있는가 하면, 아무런 연고 없이 마음이 이끄는 데로 이곳을 찾아와 정착한 화가도 있었다. 다들 비어가는 구도심 모퉁이에 자리 잡고 지역을 살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사업 심의를 위해서 왔다지만 적어도 그런 노력들 자체는 내가 감히 평가할만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방금 지나온 시가지들을 떠올리니, 감동은 금방 차가운 현실 위에 떨어져 버린다. 공동화된 구시가지에서는 이렇게 시민들이 소박하게 재생 활동들을 펼치고 있지만, 개발의 거대한 흐름이랄까, 그것은 이미 동쪽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구도심은 신시가지에 한번, 그리고 최근 혁신도시에 또 한 번 활력을 빼앗기면서 기진맥진한 지경처럼 보였다. 지역신문에 실린 ‘혁신도시가 공동화를 부추긴다’라는 기사가 내 눈에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로 읽혔다.

이 도시 상황이 보여주듯이, 우리나라의 도심공동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공공이 주도한 정책 때문이다. 서구 도시들의 공동화는 민간의 상업적 개발과 중산층의 외곽 이주 현상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정은 그렇지 않다. 구시가지에서 청사나 주요시설들을 신시가지로 옮겨 간 것도, 택지개발로 인구와 상권을 이동시켜 간 것도 다 지자체나 중앙, 곧 공공정부가 추진한 것이었다.

물론, 그런 결정 자체가 다 문제인 것은 아니겠다. 하지만 민간도 아닌 공공의 정책이라면 그로 인한 반작용, 부작용도 미리 대비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도시가 한정 없이 커가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인구감소도 엄연히 30년 전부터 예측되었던 것인데 말이다. 도심부가 비어가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인 지금에야 도시재생이라니.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지만, 약을 주어도 너무 늦게 준 것은 아닐까. 이제 경험이 쌓여가면서 시민들의 도시재생 활동도 상당히 업그레이드되고는 있다. 하지만 때로 그런 노력들이 골든타임을 지난 심폐소생술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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