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here and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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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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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28세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가 총살당하기 3분 전에, ‘이제 3분 후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그때 그는 ‘나는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그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내일은 주님을 믿어야지, 내일은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지 하다가 벌써 죽을 때가 되었구나.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아! 다시 한번 나에게 살 기회가 있다면 값진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보겠는데!’

그때 황제의 특사가 흰 수건을 흔들면서 달려왔습니다. 사형을 멈추라는 황제의 친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살게 되었고, 이후에 그때 일을 항상 생각하면서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3분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스어에서는 ‘때’를 나타내는 말이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2가 있다. 전자는 ‘시각’을, 후자는 ‘시간’을 가리킨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무엇을 하는 데 사용하는 것과 그 자체를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으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양적 시간으로서의 시간을 크로노스, 질적 시간으로서의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명명하고, 크로노스가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정해진 시간의 흐름을 뜻한다면 카이로스는 시공간을 초월한 질적 변화의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보았다. 크로노스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시간, 삶과 죽음의 시간, 1년 12달 365일, 하루 24시간 같은 시간을 말한다. 반면 카이로스는 같은 시간이라도 그 의미와 결단을 추구하는 주관적 의미의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너무도 빨리 지나가기에 제우스 신 조차도 잡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회의 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톡특한 외모를 하고 있다.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이다. 그리고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다. 그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질 수 있기 위해서이다. 그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기 위함이다. 만약 그를 알아본다면 쉽게 잡을 수 있기 위함이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그가 지나고 나면 다시는 잡지 못하기 위함이다.

삶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둘 다 필요하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인 크로노스로 삶을 가득 채워버리면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삶의 우연적 상황들을 감지하는 카이로스는 존재하지 못한다. 크로노스는 선택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는 시간이지만, 카이로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진정한 놀이나 휴식 같은 것이 바로 카이로스에 도움을 주는 행위일 것이다. 카이로스는 무엇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창조적 영감을 가져다 주고 삶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는 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코로노스’의 시간을 의미가 있는 ‘카이로스’ 의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 순간순간 결단이 필요하다. 버릴 것은 가감하게 버리고 선택할 것은 십자가를 지더라도 취할수 있는 결단이 중요하다. 카이로스가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눈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카이로스가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잡을 수 있는 민첩한 손과 발이 있어야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삶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아도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낙관주의자는 도넛을 보고, 비관주의자는 도넛의 구멍을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대 이외에는 모두 다른 사람의 몫이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 인생이 끝이 있다는 개인의 종말 그리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실 날이 온다는 역사의 종말을 인식해야 한다. 시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크로노스적 삶은 과거에 매여 미래를 기대하고 두려워하면서 자칫 현재를 무시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카이로스적 삶은 크로노스적 삶의 아쉬움과 허망함을 넘어선다. 카이로스적인 삶의 결정체는 오뚝이처럼 현재적 생존력이다. 순간 순간 삶의 의미를 찾고 인생의 맛을 누리며 삶의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

그것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이다.

시간도 흐르지만 내가 새롭게 변화되고 새롭게 흘러가야 한다. 내가 아름답게 변화되는 과정을 즐겨라. 거기에 내가 왜 존재하는지 진정한 깨달음이 있다.

시간은 결단하는 자의 몫이다. 그 결단은 지금 여기서(here and now!)이다. 인생은 결단이다. 김기포 포항 명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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