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노스의 어벤져스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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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의 어벤져스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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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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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러처드 코바세비치 전 웰스파고 회장,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윌리엄 포에지 전 질병관리청장, 라일리 벡텔 전 벡텔 회장, 샘 넌 전 연방상원의원, 채닝 로버트슨 전 스탠퍼드 공대 교수. 미국 어떤 회사의 사외이사 명단이다.

이 회사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린 테라노스(Theranos)다. 테라노스는 2003년에 엘리자베스 홈즈가 ‘실시간 치유’(Real-Time Cures)라는 이름으로 창업한 혈액검사 회사다. 한때 기업가치 100억 달러였다. 홈스는 열아홉에 스탠퍼드 공대(화학공학)를 그만두고 나와 신기술로 창업했다. 소형 상자 크기의 진단 장비가 소량의 혈액을 손가락 끝에서 채취해 암과 고지혈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병을 진단한다는 기술인데 저비용이고 몇 분 안에 결과를 낸다.

테라노스의 기술은 특히 저소득층 환자들에게는 엄청난 희소식이었다. 홈즈는 “미국에서 그 누구도 돈이 없어 진단과 진료를 받지 못하면 안된다”고 홍보하고 다녀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가 되었다. 스탠퍼드 중퇴, 첨단 기술로 성공한 기업가 이미지, 출중한 외모, 스티브 잡스를 모방한 스타일로 대중적 인기도 대단했다. 홈즈는 온갖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고 끊임없이 언론 인터뷰와 강연, 대담에 등장했다.

루퍼트 머독, 래리 앨리슨, 팀 드레이퍼 같은 거물들이 투자자로 들어왔다. 실리콘 밸리의 몇몇 투자회사들도 합세했다. 세이프웨이는 3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런데 홈즈는 회사가 개발한 기술에 대한 정보는 투자자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투자를 유치했다. 회사는 완벽한 1인 독재로 운영했다. 2003년에 월그린과 제휴했고 2015년에는 무려 클리블랜드클리닉과 제휴했다, 홈즈는 미국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여성 그룹에 입성했다.

그러다가 학계가 의심하기 시작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015년에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테라노스에 대한 탐사보도를 시작했다. 다급해진 홈즈는 당시 바이든 부통령을 회사의 랩에 초청해서 시찰하게 하고 칭찬을 들었는데 그 랩은 급조된 가짜 시설이었다.

정부 조사가 뒤따랐고 월그린은 제휴를 철회했다. 2016년에 투자자들이 소송을 시작했고 SEC를 비롯한 여러 정부 기관들의 조사가 개시되자 회사는 급속히 와해되었다. 홈즈는 2018년에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2022년에 11년형 유죄판결을 받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성을 추구하던 한 인간의 이야기는 훌루에서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다(The Dropout).

홈즈가 세상에 홍보하고 다닌 기술을 개발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나친 탐욕과 유명세 때문에 시간과 돈에 쫓긴 홈즈는 결국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연방 검사가 홈즈를 기소하면서 재판에서 한 모두 발언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테라노스 이사회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미국의 국무장관, 국방장관 같은 최고 관리 역량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거대한 조직을 책임졌던 인사들의 능력이야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고도로 기술적인 사기업의 사외이사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테라노스의 사기가 세간에 밝혀진 것은 회사에서 일하던 조지 슐츠의 손자 타일러 슐츠를 통해서다. 타일러는 조부의 소개로 홈즈를 만났고 매료되었고 입사했다. 그러나 타일러는 회사에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지 슐츠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손자를 무마하려고 노력도 했다. 결국 22세의 타일러가 익명으로 당국에 제보한 다음 월스트리트저널과 접촉했다. 사전 회유가 실패하자 회사는 기밀 유출을 이유로 타일러를 제소했고 타일러 가족은 집을 팔아서 소송비용을 대야 했다.

테라노스 이사회의 경우 명망을 통한 해당 기업의 투자유치와 사회적 자산 불리기에 동원되었던 셈이고 사외이사 본인들은 전혀 모른 상태에서 사기행각의 장식물이나 방패막이로 악용된 것이다. 특히, 로버트슨 교수는 홈즈가 학생일 때 가르친 스승이었고 1호 사외이사로 영입되었던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테라노스를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참담하게 실패한 기업지배구조 사례라고 결론지었다. 또 한 가지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 있다. “비즈니스는 사이언스를 속일 수 없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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