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두 가지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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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의 두 가지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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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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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하면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일이 책 정리와 등산이다.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책을 마땅히 둘 곳도 없고 아내도 반대하니 과감하게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100대 명산 정복’과 같은 계획을 세우고 등산 버스에 몸을 싣고 산을 오른다.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마다 성과는 다르겠지만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회의 이유를 들어봤다.

A씨는 30년 이상 다닌 직장을 나오면서 방에 있는 물건들을 다 정리했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읽고 모아 두었던 책은 회사의 자료실에 기증했다. 그뿐만 아니라 연필 꽂이와 같은 비품들도 사람들에게 주고 말 그대로 손을 탈탈 털고 시원하게 퇴직했다.

그런데 퇴직 후 몇 해를 지나다 보니 책과 비품들을 없애 버린 게 너무 아쉬웠다고 고백했다. 나의 고민 중 하나는 경영고문 기간이 끝나면 방을 반납하고 나가야 하는데 20년 이상 모아두었던 2500여권의 책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작년에 회사를 퇴직할 때도 다른 무엇보다 ‘이 책을 어떻게 하냐’가 첫 번째 해결과제였다.

다행이 회사에서 사무실을 마련해줘서 이 문제는 연기되었지만 문제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는 차에 A씨가 자신의 경험을 말해 준 것이다.

A씨는 책을 모두 처분하지 말고 상자에 넣어서 쌓아두기라도 하라고 했다. 책과 비품을 정리하고 나니 자신의 30년 역사를 입증해줄 게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책장의 책들을 죽 훑어 보노라면 책과 관련되어 자신의 역사가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집에 책을 많이 두는 것에 반대하기에 쉽지는 않지만 박스에 넣어두더라도 얼마간의 책과 비품은 꼭 가지고 있으라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B씨와는 1년만에 만난 듯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기력이 빠진 듯 하여 깜짝 놀랐다. 걷는 것도 불편해 보였다. 이유를 물어본즉 무릎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물혹이 생겼다는 것이다.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낫지 않아 큰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제 당분간 좋아하던 등산을 못하게 되었다. 등산은 고사하고 몸도 약해져서 무릎과 몸을 모두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4년전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B씨를 보았는데 거침 없이 산을 오르고 건강했다. 은행을 퇴직하고 다른 회사에서 은행 업무 관련 자문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무릎이 좋지 않아 산을 잘 못 오르는 나에게는 부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등산을 좋아했는데, 젊을 때는 교만스럽게도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뛰어서 내려왔다. 30대 중반 어느 날 밤부터 새벽까지 설악산 정상에 오르고 아침에 뛰어 내려갔더니 설악동에서 무릎에 심한 통증이 왔다. 그 이후로 산을 두 시간 이상 내려오면 무릎이 아파서 더 이상 높은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산이 묵묵히 있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C씨는 나이가 60을 넘겼는데 스노우보드를 다시 타야겠다고 했다. 스키를 즐겨 탔다가 스노우보드로 바꿔 즐겼는데 위험할 것도 같아서 그만뒀다고 했다. 그런데 유럽에서 92세 되는 할아버지가 스노우보드를 탄다는 말을 듣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다들 말렸다. 수만 명 중에 한 두 명 있을까 말까 한 일을 보고 따라 하면 안 된다는 게 중론이었다.

해외 토픽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나에게도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게 사고의 오류 중 하나다. 사람의 생각은 그런 면에서 비합리적이고 무모하다. 수천만 명 중에 하나 있을까 한 일이 내게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어쩌면 그런 무모함이 인류를 앞으로 나가게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무모함도 때가 있는 법이다. 60대들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이다. 40대는 마음이 젊은데 몸 역시 젊어서 마음을 따라 준다. 하지만 60대는 마음은 여전히 젊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외과 의사들은 나이 들어 수술을 직접 하려 하지 않는다. 긴장감이 워낙 커서 자칫하면 수술 중에 자신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몸이 젊을 때처럼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의사 한 분은 말하기를 60대는 마음은 우샤인 볼트처럼 100미터를 뛸 수 있고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몸짱도 금방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절대 몸을 혹사시키지 말라고 조언했다. 70대만 되어도 그런 앙증맞은(?) 생각을 버리고 보신하는데 ‘몸 따로 마음 따로’인 60대가 그런 면에서 가장 위험한 때라고 한다.

60대 즈음은 극단을 피해야 하는 때다. 퇴직하면서 젊음을 같이 보낸 흔적을 모두 없애는 것은 극단이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책을 버릴 때가 온다. 그 때 버리면 된다. 아쉬운 물건을 단 칼에 버리는 것이 결단은 아니다. 그런 결단은 김유신이 말 머리를 벨 때나 하면 된다. 퇴직을 하고 의욕에 넘쳐 몸을 혹사하는 것도 극단이다.

몸의 소리도 듣는 균형감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 앞서 있을 때 내 몸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찬찬히 살펴 보아야 한다. 젊을 때는 극단과 무모함이 반복되기도 하지만 인생의 오후에는 비겁해 보이지만 중간의 길을 걸어야 할 듯하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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