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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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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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음악소리가 잔잔한 물결 위로 울려 퍼진다. 벚나무 아래 공터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춘다. 앞사람 동작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음을 타며 능숙한 몸놀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엇박자로 발이 엉켜 엉덩방아를 찧는 이도 있다.강사의 컬컬한 목소리가 한껏 흥을 돋운다. 활짝 핀 벚꽃들도 살랑거리며 머리 위로 난분분 날린다. 봄날의 마장지 풍경이다.

조선시대 말을 방목해 기르는 곳을 마장馬場이라고 했다. 오늘날엔 뜻이 변하여 마술경기를 하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명 창포지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입소문이 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힐링 공간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 인근 아파트로 옮겨 오면서 이곳을 알게 되었다. 진달래꽃밭을 구경하고자 지인들과 창포산을 등산하다 하산 길에 못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마장지 수면 위에 비친 산의 수려한 풍경과 연못의 화사한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못가에 늘어선 벚꽃들은 과히 명소라 할 만큼 화려하고 아름답다. 포항 최고령 왕벚나무가 바로 이곳에 있다. 거대한 나무 둥치에서 뿜어지는 위엄은 가히 장관이다. 다양한 모양으로 뻗은 나뭇가지마다 오종종 달려 있는 꽃잎들이 이리저리 흩날리며 꽃비를 내린다. 벚나무 아래에는 어미 말과 새끼 말 두 마리의 조형물이 자리하고, 오리들이 떼를 지어 갈대와 부들 사이를 한가롭게 드나들며 봄날의 여유를 즐긴다.

집을 나서면 발걸음은 어느새 마장지로 향하고 있다. 거의 매일 산책하는 길인지라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팔각 정자에 앉아 연못을 내려다본다. 한창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산의 나무들이 반영된 못은 세상에 내려온 축복 같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고요한 풍경은 볼 때마다 새롭다.

주변에 점점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자, 환경도 변하기 시작했다. 도로가 넓혀지고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섰다. 아치형 조형물에 붉은 넝쿨장미가 화려함을 뽐내고, 못가에도 꽃댕강나무, 원추리, 수국 등 사계절마다 갖가지 꽃들과 나무들이 늘어섰다.

여름엔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 데크에서 연꽃들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시원한 분수를 가까이서 느끼다 보면 찌는 듯한 무더위도 어느새 잊어버린다. 가을엔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며 은은한 향을 앞세운 구절초가 피어나고, 못가에 촘촘히 심어둔 남천도 잎과 열매에 빨간색 물감을 들인다.

겨울은 나뭇잎이 떨어져 나간 빈 나뭇가지들이 완성한다. 말라버린 줄기와 연잎들은 물위에 지난 계절의 추억처럼 떠 있고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던 오리들도 못가에서 햇볕을 쬐며 몸을 말린다. 북적대며 찾아오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뚝 끊어지고, 간혹 운동하러 나온 몇몇이 몸을 움츠리며 바쁘게 걸음을 재촉한다. 이때쯤에야 산 중턱 작은 몸피의 자작나무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마음이 불안하고 외로울 땐 마장지를 찾는다. 정자에 앉아 연못을 내려다보면서 심호흡을 하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잔잔한 물결과 둘레의 나무와 꽃, 갈대와 오리, 말조형물까지 나를 응원한다.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이 서서히 내 몸 안에 차오른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정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안식처에서 힘을 얻었으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춤추는 대열에 합류하여 리듬에 몸을 맡긴다. 박자가 맞지 않으면 어떠랴, 동작이 좀 어설프면 또 어떠랴. 간들바람에 사방으로 흩날리는 벚꽃처럼 나도 잠시 흩날린다.

안희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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