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흉부외과 전문의, 왜 큰 병원 안 가고 동네 의원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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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흉부외과 전문의, 왜 큰 병원 안 가고 동네 의원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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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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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 대학 및 병원 근무 의사, 근로자 평균 임금 비교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의사가 부족해서이다. 뇌졸중이나 중증 외상 같은 중증응급환자 10명 중 1명이 의사가 없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최근 한 지방 병원은 연봉 4억 원을 준다고 해도 응급실에서 일할 의사를 충원하지 못했다고 하고, 대학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구하지 못해 입원 병동을 축소하고 있다. 지금도 취약한 응급의료체계와 필수 의료분야가 의사 부족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응급의료,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 이기도 하지만 나쁜 의료제도 때문이기도 하다. 첫째, 큰 병원에 있어야 할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의사를 개원하도록 부추기는 제도, 둘째, 대학병원과 동네 병원이 고혈압 환자부터 심장병 환자까지 더 많은 환자를 보려고 무한경쟁하는 무질서한 의료체계, 셋째, 의사는 안 늘리면서 병상은 끊임없이 늘어나도록 방치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환자를 봐야 할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같은 필수 의료 분야 전문의가 동네 의원을 개원하도록 부추기는 의료제도를 파헤쳐보자.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를 흔히 기피 과목이라고 부른다. 일은 힘든데 건강보험 수가(의료서비스 가격)는 낮아 이들 과목을 전공하겠다는 지원자가 부족하다고 알려져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들 과목 전문의가 부족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큰 병원에 있어야 할 전문의들이 동네 의원을 개원하기 때문에 병원에 의사가 부족해진 것이다. 이들 기피 과목 전문의 절반 가까이가 동네 의원을 개원한다. 동네 의원 중에서 자기 전문과목을 간판에 걸고 자기 분야의 환자를 보는 의사는 20~30%에 불과하다. 동네 의원에서 환자를 보다 전문의가 제 역할을 한다고 해도 배출된 전문의의 30~40%가량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큰 병원에 있어야 할 의사들이 왜 동네 의원을 여는 것일까. 동네 의원 전문의 순수입은 의과대학 임상교수와 병원 근무 전문의 월급에 비해 1.7배 많다. 입원실이 있는 동네 의원의 순수입은 교수에 비해 2.3배 많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문성이 높고 어려운 환자를 진료하는 대학교수가 동네 개원의에 비해 수입이 더 많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식적이지 않은 격차는 지난 10년간 확대되어 왔다. 2010년 1.3배 수준이었던 개원의와 대학과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수입 차이는 2019년 1.7배로 확대되었다. 지난 10년간 개원의 수입이 2배 더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개원의는 대학 교수보다 돈만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근무 시간도 짧다. 젊은 의사들이 대학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동네 의원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상식적이지 않은 일은 왜 벌어진 것일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매년 병의원과 건강보험 수가를 계약한다. 매년 올라가는 물가와 인건비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병원과 의원의 진료비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의원의 건강보험 수가를 병원보다 매년 더 많이 올린다. 동네 의원 환자는 점점 줄어드는데 동네 의원 진료비를 유지하려다보니 병원보다 의원의 수가를 높게 책정하게 된다. 처음에는 병원과 같은 수준이었던 의원의 건강보험 수가는 이제 병원에 비해 16%나 더 높다. 같은 치료를 하더라도 동네 의원이 병원에 비해 진료비를 더 많이 받으니 대학교수보다 개원의가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과 맞물려 도수치료, 미용주사, 백내장 수술 같은 비급여 진료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도 개원을 부추기고 있다. 의학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진료가 대부분이지만 건강보험 진료비에 비해 가격이 2~3배 비싸니 의사는 비급여 진료를 권한다. 환자는 민간보험이 있으면 진료비가 크게 부담되지 않으니 비급여 진료를 쉽게 받는다.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로 대학병원은 건강보험 보장률이 70%로 높아진 반면, 동네 의원의 보장률은 57%로 거꾸로 낮아졌다. 많은 개원의들이 민간의료보험을 지렛대로 비급여 진료수입을 늘려가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면 중장기적으로는 의사 배출을 늘려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배출된 의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의료제도를 고쳐야 한다. 나쁜 의료제도를 고쳐 의사의 분포를 개선하는데도 5~10년은 걸린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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