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악당’ 이미지 떠넘기는 여당?
  • 손경호기자
대통령에 ‘악당’ 이미지 떠넘기는 여당?
  • 손경호기자
  • 승인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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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에는 군량을 담당한 왕후 이야기가 나온다. 조조, 손책, 유비, 여포 등이 연합해 원술이 다스리는 수춘성을 포위 공격했는데, 30만 대군을 이끌고 가는 바람에 하루에 소모되는 군량미가 엄청났다. 곳간지기인 왕후가 군량미 부족을 보고하자, 조조는 군량을 작은 섬(짚으로 엮어 만든 그릇)으로 나누어주면서 위급함을 넘기라고 지시했다.

병사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조조는 왕후를 불러 물건을 하나 빌리자고 했다. 바로 왕후의 머리였다. 조조는 군량미 횡령죄를 덮어씌어 그를 참수했다. 조조는 병사들의 원망을 왕후에게 돌려 군사들의 불만을 진정시켰고,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그의 역작 「군주론」에서 “군주는 미움 받는 일은 타인에게 넘기고, 인기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마디로 ‘악당’ 역할은 다른 사람이 하고, 군주는 인기를 얻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권은 마키아벨리의 조언과는 정반대 방향의 길을 가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미움 받는 일들을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이 그렇다. 야당은 다수 의석을 무기로 이들 법안을 밀어붙여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이는 ‘검찰수사권완전박탈법(검수완박법)’, ‘임대차 3법’ 등 입법 독주 이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며, 야당에 ‘독재’ 이미지가 씌여졌다. ‘민주당 20년 집권론’이 10년은 커녕 5년 만에 허무하게 종식된 이유는 이 같은 나쁜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야당의 입법 독주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된 다음이다.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은 사사건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고 있다.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앞으로 계속 입법 독주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전·현직 당대표가 사법리스크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만큼 지지층 결집에 좋은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당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결코 나쁜 카드가 아니다. 대통령 거부권은 여야 정쟁에서 프레임이 야당과 대통령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이슈 주목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국회를 통과된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자꾸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독재자’ 이미지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다. 즉, ‘악당’ 이미지가 쌓이는 것이다. 야당을 제외하더라도 양곡관리법을 찬성하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 좋게 보일리가 없다. 그런데 여당 측은 간호법을 놓고 또다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흘리며 대통령에게 공을 떠넘기고 있다. 미움받는 일은 당이 하고, 인기를 얻는 일은 대통령이 해야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대통령실이 ‘설겆이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물론 여권은 소수 여당의 한계때문이라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권이 내년 총선을 윤석열 대통령 중심으로 치르려고 한다면 국정지지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사사건건 이슈마다 대통령을 끌어들이고 있어 대통령 국정지지도에 부담을 안기고 있다. 이런 식이면 국민의힘은 ‘친윤’(親尹)이기 보다는 윤심팔이, 즉 ‘칭윤’(稱尹)이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문재인 정부가 퇴임때까지 레임덕 없이 마무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가 지지층 결집이고, 다른 하나가 청와대를 이슈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권이 사사건건 자꾸 대통령을 정쟁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정치력 부재라고 밖에 해석이 안 된다.

손경호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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