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碑)
  • 모용복국장
광개토대왕비(碑)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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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여 전 동북3성 취재 방문
광개토대왕비 유리 속에 유폐
주변은 진입로 등 돌로 포장
공원처럼 잘 조성되어 대조적
최근 광개토대왕비 단장 주체
중국 아닌 한국인 사실 알아
주인공 오효정선생 최근 타계

2017년 9월, 일주일간 일정으로 중국 동북 3성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우리 한민족, 그중에서도 고구려 역사 지우기에 나선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이어지면서 동북부지역 역사왜곡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다.

단동(丹東)에서 1박을 하고 고구려 첫 수도 졸본성(卒本城)을 거쳐 3일 차 길림성 통화시 집안(集安)에 도착했다. 이 곳은 우리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인 광개토대왕이 잠든 곳이다. 광개토대왕비(碑)를 보기 위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는 동안 우리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훑는 공안들의 삼엄한 눈초리가 느껴졌다.

광개토대왕비는 웅장했다. 높이가 무려 6.39m에 달하고 무게가 37t이나 되는 거대한 비석 앞에서 정복왕의 위대함과 1600여 년 전 고구려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적힌 이 비는 동양에서 가장 큰 금석문으로, 거대한 비석이 유폐돼 있는 유리집은 비석 윗부분이 천장에 닿을 듯하고 내부도 협소했다. 물론 내부 출입은 허용되지 않았다.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중국 측의 속셈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주변은 공원처럼 잘 정돈되어 있고 돌로 포장된 길도 제법 널찍했다. 조경수도 보기 좋게 심어져 있었다. 고구려 역사 지우기에 혈안인 중국 당국이 광개토대왕비 주변을 왜 이처럼 잘 단장해 놓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한국인 관광객을 유인해 돈벌이를 할 속셈으로밖에 짐작할 수 없었다. 당시로서는.

의문은 5년여가 흐른 최근에야 풀렸다. 광개토대왕비를 단장한 것이 중국 정부가 아니라 다름 아닌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그 주인공인 오효정(84) 선생이 최근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과 행적을 전해듣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당시 진주에서 건설업을 하던 선생은 1996년 8월 사업차 중국을 방문했다 집안시에서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목격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처참한 상황을 아쉬워하며 사비 7억 원을 털어 1년여에 걸쳐 비 주변을 정비했다. 3km 진입로와 주변 도로를 돌로 포장해 접근을 쉽게 하고, 민족혼을 살리기 위해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와 자작나무를 조경수로 심어 잘 단장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제강점기 연변 동북 3성에서 일제와 맞서 싸우다 희생된 5만여 명의 무명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항일무명영웅비’도 건립했다. 후세에게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민족정신을 재무장시키고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다.

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자료를 수집해 책으로도 발간했다. 사학자와 함께 동북 3성에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생생한 증거와 증언을 수집한 자료를 모아 ‘강제징용자와 종군위안부의 증언’과 ‘끌려간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5000권을 출판해 무료로 배포하기까지 했다.

그는 평소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고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정작 우리나라 국민은 관심을 가지지 않아 아쉽다”며 “가장 시급한 것은 역사교육이다. 기본역사가 없는 나라는 뿌리가 없는데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국가가 외면하고 하지 못한 일을 한 개인이 나서 물심(物心)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대왕의 비를 정비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스러져간 이름없는 영웅들을 위한 비까지 세웠으니 어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제 강제징용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수집해 책으로 엮어 무료로 나눠졌다고 하니 그의 애국심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갈수록 역사의식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 오효정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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