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복지와 ‘장발장’의 悲哀
  • 모용복국장
공공기관 복지와 ‘장발장’의 悲哀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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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경영실적 S등급 全無
실적 비해 고액연봉·과다 복지
일부 公기관 정부 지침 어기고
임직원에 低利 사내 대출 펑펑
어린 아이에게 먹일 방울토마토
분유·기저귀 절도 사건 잇따라
경찰 생활고에 되레 도움 손길
‘장발장’은 우리사회 현실 얘기

공공기관 하면 높은 연봉과 복리후생 혜택을 누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일자리지만 정치권과 언론의 감시가 느슨한 편이어서 실적은 미미한 편이다. 실제로 그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를 보면 S(탁월)등급을 받은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362곳 공공기관 정규직 평균연봉은 7000만원이 넘었다. 연봉 1억 원을 넘긴 공공기관도 15곳이나 된다. 이는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소득보다도 높은 금액이다.

이뿐만 아니다. 고액 연봉도 모자라 일부 공공기관은 임직원에게 주택 자금을 대출할 때 정부 지침을 어기고 낮은 금리의 ‘특혜성 대출’을 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기재부가 2021년 7월 제정한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임직원에게 주택 자금을 빌려줄 때 은행 가계자금 대출금리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하면 안 된다. 대출 한도도 7000만 원 이하로 제한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현재 주택자금 사내대출을 시행하고 있는 60개 공공기관 중 30개 기관이 정부 지침을 어기고 퍼주기식 특혜성 사내대출을 시행해 왔다. 심지어 지난 1분기까지 누적 적자가 44조원에 달하는 한전은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을 1억 원까지 연 3%로 해주고 있다.

최근 정부의 수신료와 전기 요금 분리 징수 추진으로 어수선한 KBS의 경우는 더욱 가관이다. KBS는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전출되는 직원들의 살 곳을 마련해준다는 명목으로 최대 1억5000만원까지 연 2% 고정금리로 6년간 전세자금 대출을 해줬다. 이는 기재부 지침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금리로 국민들은 연 7~10%대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때 수신료로 월급을 받는 KBS 직원들은 억대 연봉을 받으며 사내복지기금에서 연 2%로 저렴한 전세대출까지 파격적인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개인이 아닌 사회의 공익을 위해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임직원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펑펑 돈을 쓰고 있을 때, 우리사회 한 편에서는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바람 앞에 등불처럼 하루하루 위기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도 있다.

이달 초 경기도 구리시에서 홀로 여섯 살 딸을 키우는 40대 여성은 방울토마토를 먹고 싶다는 딸의 말을 뿌리치지 못해 마트에서 방울토마토를 훔친 혐의로 입건됐다. 그는 경찰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자 먹다 남은 방울토마토를 들고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 조사에서 “어린 딸이 방울토마토를 사달라고 조르는데 돈이 없어 훔쳤다”고 털어놨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이 여성은 이혼 후 6세 딸을 혼자 양육하고 있지만 전 남편이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생활고를 겪어 왔다. 임대아파트 관리비와 임대료도 수개월째 밀려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처럼 이혼과 양육비 미지급, 생활고를 잇달아 겪으면서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심해졌다.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경찰은 시민과 전문가로 구성된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청취한 뒤 비록 절도죄를 저질렀지만 극심한 생활고 속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딱한 사정을 참작해 훈방 조치했다. 또 이에 그치지 않고 구리시 희망복지팀에 연락해 도와줄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지난 3월 강원도 원주에서는 40대 여성이 대형마트를 돌며 분유와 기저귀를 훔치다 붙잡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조리원에서 막 나온 아기가 10시간 동안 밥을 못 먹었다”며 “수중에 돈이 없어 분유와 기저귀를 훔쳤다”고 털어놨다.

여성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던 담당 경찰관은 한 편으론 여성의 말이 마음에 걸려 함께 거주지를 방문했다. 자신도 지난해 아이의 아빠가 됐기 때문이다. 경찰관이 여성과 함께 그가 사는 원룸을 찾았을 때 실제로 원룸 안에는 태어난 지 2개월 된 갓난아이가 울고 있었다. 경찰관은 눈물을 흘리며 범행을 시인하는 여성을 안타깝게 여겨 조사를 마친 후 마트에서 분유를 구매해 여성에게 전달하고 복지제도를 안내해줬다.

우리사회에는 억대 연봉에 억대 저리 주택대출까지 받아가며 온갖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에게 먹일 토마토와 분유, 기저귀를 살 돈이 없어 절도를 저질러야 하는 이들도 있다. 조카에게 먹일 빵 몇 조각을 훔치다 19년을 감옥에서 썩어야 했던 ‘장발장’은 단지 200여 년 전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이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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