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보국’향한 시작...新 성공신화 창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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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보국’향한 시작...新 성공신화 창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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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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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태준에서 이구택 회장까지  
 
 
 
 
 
 
 
 
포스코는 올해 `불혹’의 40년 세월을 맞았다. `제철보국’을 위해 한결같이 달려온 길이다. 마치 용광로의 쇳물이 1초라도 멈추지 않듯이, 창업자인 박태준 명예회장부터 현 이구택 회장까지 포스코를 이끌어온 역대 회장들의 경영을 살펴본다.
 
 ◆ `살아있는 전설’ 창업자 박태준
 `모두 우향웃!’1968년 6월15일 오전 4시. 비상소집된 포항제철 건설요원들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막 솟아오르고, 현장 건설사무소 오른쪽 아래로는 영일만의 푸른 파도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요.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때는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오.”
 포항의 모래 벌판에 종합제철소를 세운다는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실패할 경우 영일만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를 `우향우 정신’이라고 표현했다.(박태준 명예회장의 회고록에서)
 포스코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후 1992년 10월3일 창업자인 박태준 명예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박 명예회장은 “각하의 명을 받아 25년만에 제철입국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음을 각하의 영전에 보고합니다.”
 그리고 포스코를 떠났다. 박 명예회장은 제철보국으로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그었다.
 역사는 그를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른다.
 
 ◆ 과도기의 황경로·정명식 회장
 그해 10월10일 포항의 대회의장에서 2대 황경로 회장이 취임했다.
 창업자의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져 버리고 심각한 불황마져 닥쳐온 위기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회사 경영을 맡게 된 것이다.
 황 회장은 “이제는 홀로 서야 하는데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경영성과뿐”이라고 강조했다.
 1993년 3월12일 정명식 부회장이 3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정 회장은 창업세대가 물러난 경영공백을 최소화와 안정에 중점을 두었다.
 같은해 4월1일 `신포스코 창조’를 선포했다. 3대 과업으로 △부조리 추방 △권위주의 탈피 △경영구조 혁신을 내걸었다.
 10월1일부터는 출·퇴근복이 자율화 됐다. 창사 이래 회사의 상징 제복처럼 여겨졌던 황색 근무복이 사라진 것이다.
 포스코는 “과도기에 취임한 황· 정 회장이 뚜럿한 업적을 남기기에는 재임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말했다.
 
 ◆ 외부인사 김만제 `녹색경영’과 글로벌 토대
 1994년 3월8일 김만제 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4대 회장에 취임했다. 창사 이후 첫 외부인사였다.
 그해 경영환경은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건설한 1970~1980년대 고도성장 시대와는 많이 달랐다.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더불어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이 국제화되면서 개방이 급속히 진행됐다.
 김 회장은 4월1일 `녹색경영 철학’을 발표했다.
 녹색은 회사의 전통적인 기업문화인 `황색’과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청색’의 조화를 의미했다.
 이는 유연한 조직, 민주적 관리, 투명한 경영으로 압축됐다.
 1977년 3월14일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경영 체제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했다.
 김 회장은 설비확장 추진에도 중점을 두었다.
 1996년 10월 광양제철소에 5고로 착공식을 가졌다. 광양 1미니밀 준공, 광양 4냉연공장 준공(1997년) 포항 3후판공장 준공(1997년 9월) 포항 스테인리스 2기 증설(1996년 8월)등이다.
 김 회장은 1994년 10월14일 뉴욕증권거래소의 상장 조인서에 서명했다. 포스코가 국내 기업 최초로 세계 금융시장의 관문인 월스트리트에 상장한 것이다.
 1997년 11월 IMF사태가 터졌다. 한보철강 삼미특수강 기아특수강 등 철강업체가 부도를 맡았다.
 국가경제의 위기가 철강산업에도 찾아온 것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김 회장에 대해 “근대 국영기업 형태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의 토대를 닦은 분이다”고 평가했다.
 
 ◆ 유상부, IMF사태맞아 조강량 확대
 1998년 3월17일 제5대 유상부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유 회장은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는 경영’을 표방했다. 포스코는 외환위기의 악조건을 △수출증대 △고부가 제품 △판매확대 △원가절감 등으로 극복해 나갔다.
 그해 포스코는 세계 1위의 조강 생산량(2643만t)을 기록했다.
 포스코의 한 직원은 “당시는 국가경제 위기라 정신무장을 단단히하고 생산량 확대에 중점을 두었다”고 회고했다.
 유 회장은 이어 △설비투자 △해외투자 △판매부문 △출자사 구조조정 등을 단행했다.
 30여년 동안 공기업으로써 국가경제에 큰 기여를 했으나 내부적으로 생산자 중심의 사고가 남아 있었다.
 그는 1998년 12월 임원회의를 통해 “행정, 관리 등 회사의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며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PI(Process Innovation)”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 10월4일 포스코는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전환했다.
 민영화를 계기로 2002년 3월15일 주총에서 포항제철주식회사라는 사명 대신 해외 브랜드로 사용해온 `포스코(POSCO)’를 정식 사명으로 채택했다.
 유 회장을 두고 주변에서는 “포스코 본업인 철강을 중시했으나, 보수적 경영으로 세계 철강사들의 인수합병(M&A) 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놓친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 이구택 회장, 새로운 성공신화 창조. 가자 해외로.
 지난해 5월30일, 영일만의 포항제철소에도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이날 세계 철의 역사 100년을 새로 쓰는 포스코 파이넥스 준공식이 거행됐다.
 이구택 회장은 준공식이 시작될 무렵 행사장 후미에서 자신의 신발끈을 고쳐 묶었다. 
 새로운 시작의 결의였을 것이다.
 이 회장은 환영사에서 “우리 철강산업은 선진 철강사들의 대형화 추세와 후발주자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03년 3월15일 제6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1969년 포스코에 입사한 공채 1기다.
 취임초부터 성장과 혁신으로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중점을 두었다.
 미탈스틸의 아르셀로 인수합병(M&A)으로 철강사의 공룡화가 시작됐으며, 중국의 추격은 갈수록 위협적인 분위기였다.
 포스코는 대응책으로 `덩치 키우기’에 나섰다. 국내 조강량 증산과 함께 중국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지의 일관제철소 및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6시그마와 원료의 안정적 확보, 고급강 중심의 기술력에도 박차를 가했다. 또 윤리경영과 사회공헌활동으로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이 회장의 현안 문제는 해외 진출이다. 인도 오리사주(연 1200만t)와 베트남 반퐁만(연 400만t) 일대의 일관제철소 건설이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의 반발과 환경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올해까지 총 5000만t(국내 3500만t, 해외 1500만t)생산이 목표였다. 그러나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2010년으로 연기했으나 이마져 불투명하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해외제철소 건설의 지지부진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이 회장의 경영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이 회장은 1일 창립 40주년을 맞아 포스코의 비전과 목표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이진수기자 j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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