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을 보고 난 후
  • 모용복국장
버스킹을 보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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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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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바다, 그리고 포항제철소 야경

“풀잎 끝에 이슬방울처럼~ 당신의 고운 눈동자~ 언제나 나만을 사랑하는~”

한바탕 주차전쟁을 벌인 끝에 시립 공영주차장 인근에 힘겹게 차를 대고 걸어 올라오니 저 멀리서 귀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온다. 7시를 갓 넘겼으니 아마 이 노래가 첫 곡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공연시간에 맞춰 도착한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영일대해수욕장 바다시청 공연장에서 김진아 씨의 ‘행복충전음악회’ 버스킹이 있는 날이다. 그는 지난 주말에는 송도해수욕장에서 공연을 갖는다고 했다. 단순히 취미를 넘어 포항을 온통 노래로 물들일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씨는 모 언론에서 주최한 주부가요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해 협회에 이름을 올린 가수다. 하지만 주업은 따로 있다. 포항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왕성하게 노래 재능기부를 하는 중이다.

공연이 열리는 바다시청 일대에는 이미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의자에 앉거나 삼삼오오 서서 노래를 즐기고 있다. 길을 가던 사람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서서 함께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다. 김진아 씨는 기타와 색소폰 반주에 맞춰 여러 곡을 불렀다. 관객들은 감미로운 포크송에는 조용히 몸을 움직이며 따라 부르다가 흥겨운 트로트가 나오자 환호성을 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사람도 있다. 버스킹은 가수와 시민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해 도시를 사람 내음 나는 곳으로 만드는 문화 촉매제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이 무르익어 가는 사이 영일대해수욕장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백사장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막바지 피서를 즐기느라 분주했다. 영일만 밤바다 위로 김진아 씨의 감미로운 노래가 울려 퍼지자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공장들도 일제히 불을 밝힌다. 영일만 너머로 일렬로 늘어선 불빛들. 밤에 보는 포항제철소의 야경은 확실히 장관이다. 불빛 너머 저 곳에서 과연 철이 생산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바다시청 공연장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김진아 씨.

‘마지막 노래’라는 김 씨의 멘트를 들으며 노래의 여운을 귓전에 담은 채 발길을 돌렸다. 차가 있는 곳을 향해 한참을 걸으니 맞은 편 산 너머로 포항의 자랑거리인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포항시와 포스코의 상생 결정체인 스페이스워크가 제철소 야경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낮이 저물고 밤이 오는 지점에 영일대해수욕장은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서 지난 1년 여 간 극한대립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득한 일처럼 다가온다.

이름만큼이나 영일대해수욕장은 많이 변했다. 내가 기억하기에 예전에는 그리 이름난 관광명소가 아니었다. 인근 주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포항을 방문한 관광객이 바다를 볼 요량으로 찾는 정도였다. 간혹 나같은 사람들이 야밤에 술집을 찾아 이 일대 거리를 헤매거나 백사장 모래를 담요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새곤 했다.
 

영일대 해상누각 뒤로 포항제철소 야경이 포항 앞바다를 수놓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이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포항시는 영일대해수욕장을 해양도시를 상징하는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백사장을 넓히고 인도를 새롭게 단장했다. 또 주차장, 화장실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해상누각인 영일대, 이순신 장군상과 같은 다양한 조형물을 조성해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변모시켰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방향을 나타내는 이름인 ‘북부해수욕장’을 ‘영일대해수욕장’으로 명칭을 변경해 지역 상징성을 극대화했다. 만일 지금 포항을 떠나 십 여 년 만에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경 유럽의 어느 낭만 해변쯤으로 착각하게 되리라.

백사장을 따라 난 인도 위에는 여전히 오가는 인파들로 북적댄다. 유모차를 미는 젊은 부부, 휠체어를 탄 어르신과 가족들,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연인들,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마치 포항시민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노랑머리 흰머리 외국인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띈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빛이 아닌 진정한 여행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영일대해수욕장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깊어가는 여름 밤, 노래가 있고 바다가 있고 포항제철소의 야경이 있으니 이만한 호사가 어디 있으랴. 이런 아름다운 관광지를 가진 포항시민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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