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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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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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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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접하다 보면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나이를 먹으니 뇌가 굳어서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아”라는 말이다. 심지어 20대 후반 청년이 대학을 다니는 동생에게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실소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그와 비례하여 뇌는 점점 굳어지고 기능이 저하되는 것일까? 정말 나이가 들면 퇴화한 뇌로 인해 삶을 더는 향상할 수 없는 것일까?

19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의사나 과학자들은 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심장에 있고 뇌는 별 볼 일 없는 장기라 여겼다. 그러나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 뇌과학은 육체와 생각, 성격, 감정, 마음을 모두 뇌가 관장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냈다. 그렇다면 높은 지능으로 지구의 지배종이 된 인간의 뇌는 동물에 비교해 다른 점이 무엇일까? 놀랍게도 사람이나 다른 포유류에서 뇌의 구조적 차이점은 거의 없었다. 무언가 특별한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다른 점은 뇌의 신경세포를 만들어내는 시간과 정도의 차이가 있었으며, 뇌의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고도로 강화되어 뇌의 복잡성이 동물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뇌에 대해 새롭게 규명된 또 다른 사실이 몇 가지 더 있다. 사람은 성장이 끝나면 뇌의 신경세포가 더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사실이었다. 해마와 같은 특정 신경세포는 새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뇌는 그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이며, 이 시스템은 상황과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재배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각신경이 손상되어 들을 수 없게 되면 청각신경을 담당하던 세포가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고, 주변에 손상되지 않은 세포가 손상된 세포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뇌의 신경세포는 원래 주어진 하나의 역할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매우 유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뇌 가소성”이다. 쉽게 표현하면 뇌는 외부자극에 따라 신경회로망을 재배열하고 또 성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습 등의 외부자극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뇌세포는 계속 성장하고,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신경세포는 쇠퇴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특히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는 끊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은 본질적 실체일까? 그렇지는 않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숱한 경험에 의해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뇌의 예측반응, 즉 시뮬레이션이다. 뇌는 단단하고 두꺼운 두개골이라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있다. 그 때문에 뇌는 스스로 외부세계와 직접 접할 수 없다. 따라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인체의 감각기관에 의해 전달된 과거의 축적된 데이터에 의한 예측을 내보낸다.

가령, 사막에서 길을 잃어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물을 발견해 벌컥벌컥 마시면 그 즉시 갈증이 해소되는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 위장에 들어간 물이 혈액에 흡수되어 인체에 전달되기까지는 20여 분이 소요된다. 물을 마시자마자 즉시 갈증이 해소되는 시원한 느낌은 뇌가 만들어낸 예측반응일 뿐, 실제는 가상적인 느낌이다. 보고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환청을 듣거나 환영을 보게 되는 이유도 뇌가 예측하여 내보낸 허상이다.

그럼 우리는 뇌가 구축한 경험적 데이터에 얽매인 채 살아야 하는가?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 의식적으로 행동과 생각을 바꾸고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뇌의 예측방식을 변화시켜 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시애틀 연구소에서 49년 동안 뇌에 관한 종단 연구를 시행한 결과, 반응에 대한 민첩성과 계산력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떨어지지만(이조차도 개인적 편차가 있음) 통찰력, 어휘력, 판단력, 요점 파악과 종합 능력은 50대가 되어도 완만하게 증가하였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육체적으로 건강한 70살 그룹의 사람들의 인지능력이 허약한 55살 그룹의 사람들보다 더 높았다는 사실이다. 육체적 건강이 뇌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함께 밝혀진 것이다.

사실, 본질적으로 사람의 뇌는 부산하고 산만하다. 문명이 없었던 초기 인류는 자신들의 생명을 노리는 온갖 맹수들로 가득한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며 경계하고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다. 그런 DNA를 물려받았기에 배워야 하는 청소년 시절에 공부에 집중하는 게 그토록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배움의 시절을 지난 그 이후부터이다. 직장을 가지고 세상 속에 나아가면 기계적인 패턴의 삶을 살아간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반복적인 일을 하고 반복적인 생활을 한다. 몇 년 동안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 없고, 운동 부족으로 뱃살은 자꾸 늘어난다. 몸이 무거워지니 집에만 오면 늘어져 TV 앞에 앉아 있거나, 핸드폰을 쳐다보다 잠이 든다. 뇌에 어떤 자극도 주지 않는 삶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이 들수록 뇌가 굳어간다는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뇌는 이 신경세포는 사용하지 않으니 쓸데없는 것이라 인식하여 내팽개쳐졌기 때문에 쇠퇴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지금 뇌에 어떤 자극을 주고 있는가? 먹고사는 데는 크게 상관없을지라도 인문학이나 철학책을 펼쳐보라. 단 30분 만이라도 몸을 일으켜 강변을 산책해보라. 조용한 공간에서 사물의 연관성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유추와 논리를 끌어내며, 고유한 생각을 키워보라. 그런 작은 일들이 당신의 뇌를 건강하게 유지한다. 그리고 삶도 점점 달라져 간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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